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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왜냐면

촉법소년 연령 하향만으로는 안된다

등록 2022-04-25 17:04수정 2022-04-26 02:10

[왜냐면] 최원훈 | 법무부 범죄예방정책국 보호직 공무원

‘촉법소년 연령을 낮춰서 엄벌해야 한다’는 여론과 윤석열 대통령 당선자의 공약에 따라 촉법소년 연령 기준 현실화 방안이 추진될 예정이다.

이 방안은 촉법소년이 저지른 특정 강력범죄를 형사처벌하는 데 목적이 있다. 그런데 촉법소년 연령을 낮추는 법 개정 이전에 소년사법체계의 문제점부터 개선할 필요가 있다. 소년사건 처리 절차가 충동적·집단적으로 비행하는 요즘 청소년들의 특성을 따라가지 못하는 구조적인 한계를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소년사건이 경찰에 입건되면 소년범은 경찰·검찰 조사를 받는다. 검찰 단계에서 가정법원 소년부로 송치해 소년재판 대상이 되거나, 형사사건으로 기소하면 구치소에 수용된 뒤 형사재판을 받는다. 현행 시스템에서 소년범이 범죄를 저지른 뒤 보호처분(소년재판)을 받기까지는 평균 5~6개월, 형사처분(형사재판)을 선고받는 데는 7~10개월이 소요된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여러가지 문제점이 발생한다.

우선 소년부로 송치된 소년범은 자유를 박탈당하지 않고 수사에서 재판에 이르기까지 비행 환경에 방임된 채로 생활한다. 이 기간에 재범률이 매우 높지만 시기적절하게 개입할 제도적인 장치가 없다. 보호처분 중 가장 무거운 소년원 처분을 받아도, 한방에서 여러명이 생활하는 수용 환경 때문에 비행 친구를 사귀게 된다. 결국 소년원 생활을 마친 뒤 범죄를 확대·재생산하면서 상습범이 되는 경우가 적지 않다.

형사재판의 경우에도 구치소에 수용된 소년범은 성인범과 같은 호실에서 생활한다. 운동시간에는 조직폭력배나 마약사범 등과 같은 공간에서 운동하고 대화를 나눈다. 따라서 범죄학습에 무방비로 노출된다. 형사재판 직전에 소년부로 송치되는 경우도 있지만 이미 많은 시간이 지난 뒤다. 실형 선고 뒤에는 전국에 하나뿐인 소년교도소에 모여서 네트워크를 형성한다.

이런 문제점들을 개선하기 위해 소년범죄 관련 대통령 당선자의 공약 중 ‘통합가정법원 신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소년범죄를 전담하는 통합가정법원이 설립되면 기존에 따로 진행되던 소년부 송치 사건과 형사사건을 통합해 맡기 때문에 신속한 재판이 가능하다. 이 경우 타인에게 정신적·신체적·물질적인 피해를 끼치면 즉시 엄정한 법의 심판을 받는다는 경각심을 줄 수 있다. 또한 수사 단계에서 조기에 개입, 지도·감독할 수 있는 ‘재판 전 보호관찰’ 제도를 도입해 소년범을 선도하고 재범을 막을 수 있다.

결국 소년사건 재판의 전문성을 강화하고 신속한 처분을 위해 통합가정법원을 신설하고, 보호처분 집행의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소년 보호관찰 인력 충원과 소년분류심사원 증설을 추진해야 한다. 가까운 일본만 하더라도 소년교도소 7개, 소년분류심사원 52개, 소년원이 52개이지만, 우리나라는 소년교도소 1개, 소년분류심사원 1개, 소년원 10개에 불과하다.

결국 소년원 수용 과밀을 해소하고 재사회화의 기능을 강화하기 위해서는 소년원을 소규모화하고 더 늘려야 한다. 촉법소년 연령을 1~2살 낮추면 형사재판을 받는 소년범이 늘어나는 만큼, 이들을 성인범과 분리해 수용하고 교화할 소년구치소와 소년교도소 증설도 필요하다.

최근 세간에 화제가 된 드라마 <소년심판>의 영향으로 촉법소년과 소년범죄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다시 커지고 있다. 하지만 혐오에 기반한 촉법소년 연령 하향만으론 안 된다. 촉법소년 연령 하향 정책이 실효성을 거두려면 소년사법체계의 전반적인 개선과 인력·시설 확충이 전제돼야 한다. 물론 이 과정에서 님비현상 등 넘어야 할 산도 있다. 이런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멀리, 폭넓게 내다보는 정책이 절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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