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번째 어린이날을 이틀 앞둔 지난 3일 오전 광주 북구 전남대학교 교정에서 북구청직장어린이집 어린이들이 마스크를 벗고 야외활동을 즐기고 있다. 연합뉴스
[왜냐면] 김규수 | 원광대 명예교수·색동회 이사
언어는 사람들이 필요에 따라 만들어 유통하면 그 시대의 소통 도구로 쓰인다. 하지만 요즘에 쓰이는 신조어 중에는 기상천외하고 생뚱한 것들이 많아서 어리둥절할 지경이다. 대개 신조어는 두 단어에서 상징적인 의미를 합성해 만드는 경우가 많다. 요즘 많이 쓰이는 신조어를 보면 주식 초보자는 ‘주린이’, 골프 초보자는 ‘골린이’, 심지어 등산이 서투른 사람은 ‘등린이’라고 부른다고 한다. 초보자나 미숙한 사람을 가리키고자 ‘어린이’라는 단어를 합성해서 만든 말이다. 이는 어린이라는 말의 의미를 왜곡하고 특정 연령대를 깎아내린다는 점에서 매우 부적절하다고 생각한다.
어린이라는 단어가 어떻게 만들어졌고 어떤 의미로 쓰여왔는지 안다면, 어린이가 초보자나 미숙한 사람을 가리키는 말이 결코 아니며, 그런 의미로 사용돼서도 안 된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흔히들 “어린이는 내일의 기둥이자, 미래의 새싹”이라고 입을 모은다. 그래서 해마다 어린이날이 되면 어린이를 위한 다채로운 행사가 열리고 선물도 쏟아진다. 그렇지만 정작 어린이란 말의 의미는 깊이 생각하지 않는 것 같다.
어린이는 다음 세대를 이어갈 아이의 존칭이다. 어린이는 어린아이의 준말이 아니라 사실은, 어린 사람을 높여서 부르는 말이다. 어린이 반대말은 어른이다. 어린 사람의 존칭은 어린이고, 어른 사람의 존칭은 어르신이다. 젊은 사람을 젊은이라 하고 늙은 사람을 늙은이라고 부르는 것은 존칭이 아니다.
어린이를 진정 존중하고 사랑하는 것이 나라와 민족을 지키는 일이라고 생각한 이는 바로 소파 방정환 선생이다. 소파 이전에도 어린이라는 말이 쓰이고 있었지만 존중의 의미로 사용되지는 않았다. 소파는 어린 사람을 존중할 줄 모르던 시대에 어린이를 진정 사랑할 줄 알았던 위인이다. 도쿄 유학 시절에는 색동회라는 단체를 조직하고, 어린이날을 제정해 어린이 운동에 몸을 바친다. 그는 1923년 약관 25살에 <어린이>라는 잡지를 창간하여 어린이를 위한 교육과 문예진흥에 앞장선다. 우리 민족과 국가가 위태로울 때, 나라의 미래를 위해 가장 시급하고 중요한 어린이 교육문화 운동에 가장 크게 기여한 인물을 꼽으라 하면 단연 소파라고 할 수 있다. 1931년 33살이라는 아까운 나이에 요절한 것도 매우 애석한 일이지만, 근세 우리나라를 대표할 만한 세계적 인물이 제대로 조명받지 못한 것은 아쉬움이 크다 하겠다.
소파는 어른들이 어린이를 기쁘고 행복하게 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어린이를 내려다보지 말고 올려다보라고 당부했다. 어린이들의 얼굴에서 ‘아침 햇살’과 같은 기운이 번지게 해야 한다고 했다. 어린이는 어른에게 기쁨을 주는데, 어른이 어린이를 업신여기고 구박해서는 절대로 안 된다고 했다. 어린이와 함께 살면서 어린이들로부터 사랑과 평화를 맛보지 못하고, 그들에게 일방적으로 봉사만 하고 있다고 느끼는 부모가 있다면 그는 어리석은 부모이다. 어린이를 보면서 기쁨과 삶의 경외감을 느끼지 못하는 어른이 있다면 그는 불행한 어른이다. 어린이를 슬프게 하고 어찌 기쁨을 누릴 수 있을까. 어린이가 행복해야 어른도 행복하다.
어린이라는 말의 의미와 역사성을 진정 알고 있다면, 주린이니 골린이니 하는 새말을 만들어 쓰지는 않을 것이라고 믿는다. 말에는 사용하는 사람의 앎의 수준과 가치판단의 기준이 반영되어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