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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동훈 후보자 딸 ‘영문 논문’ 읽어보니 [왜냐면]

등록 2022-05-09 14:53수정 2022-05-10 02:04

한동훈 법무부 장관 후보자가 9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인사청문회에서 의원들의 질의를 메모하고 있다. 공동취재사진
한동훈 법무부 장관 후보자가 9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인사청문회에서 의원들의 질의를 메모하고 있다. 공동취재사진

최승환ㅣ일리노이주립대 정치학과 교수

요즘 한국에서는 한동훈 법무부 장관 후보자의 딸이 쓴 논문들이 명문대학 진학을 위한 스펙 쌓기냐 아니냐를 가지고 여야가 공방을 벌이고 있는 것 같다. 그런데 이런 공방에서 논문들의 가치와 내용에 관한 논의는 전혀 이뤄지지 않고 있어, 학자인 나로서는 이상하게 느껴졌다. 마침 한 후보 딸이 쓴 영문 논문들이 내 연구영역과도 유사해 한번 읽어보기로 하고, 해당 저널 웹사이트에서 해당 논문 네편을 내려받아 출력했다. 그런데 첫번째 논문인 ‘분쟁 이후의 교육과 보건의료의 개선방안’을 읽고 나서, 나머지 논문들을 읽는 것은 괜한 시간낭비가 될 것 같아 그만두기로 했다.

우선 내가 읽은 논문은 ‘인문, 예술 및 문학 아시아저널’(Asian Journal of Humanity, Art and Literature)에 실린 것으로 제목, 초록, 전문, 본문, 결론, 참고논문들로 이뤄져 논문의 기본적인 요소들은 모두 갖추고 있었다. 분량은 9쪽이었다. 이제는 한국에서도 고교 1학년이 이 정도 영문 논문을 쓸 수 있는 역량이 있다는 것에 잠시 기뻤다. 내가 가르치고 있는 일리노이주립대학교에 다니는 일부 학생들은, 자신의 집안에서는 처음으로 대학 진학을 해서인지 논문 쓰기가 한 후보 딸에 못 미쳤기 때문이다.

각설하고, 한 후보 딸이 쓴 ‘분쟁 이후의 교육과 보건의료의 개선방안’은 전문학술논문집에 실린 것이니, 단순히 고등학생의 리포트나 에세이라고 할 수 없다는 게 내 의견이다. 해당 저널 웹사이트에서는 ‘아시아 비즈니스 컨소시엄에서 만든 논문집으로 외부심사위원들의 평가로 출간 여부를 결정하는 학술지’라고 스스로를 소개하고 있었다. 하지만 다음과 같은 이유로 한 후보 딸이 쓴 논문이 어떻게 출간될 수 있었는지 수긍하기 어려웠다.

첫째, 해당 저널 웹사이트는 ‘논문은 반드시 새로운 연구여야 한다’고 설명하고 있는데, 한 후보 딸이 쓴 논문은 기존 논문 20개를 여기저기 짜깁기한 것으로 독창적인 요소가 전혀 없었다. 특히 88~89쪽 교육시스템에 관한 서술은, 4개의 기존 논문에 있는 내용과 거의 차이가 없었다.

둘째, 논문은 사실에 바탕을 둬 쓰여야 하는데, 이 논문은 사실과 정반대로 서술된 부분이 있었다. 대표적으로 87쪽 ‘알바니아인들은 더는 숨어서 자녀들을 교육할 필요가 없다’는 대목은 사실과 정반대다. 한 후보 딸이 참고한 푸포브치(2013) 논문(552쪽)에서는 “알바니아인들이 중심이 돼 만든 학교는 공개적으로 운용됐다”고 서술돼 있기 때문이다. 한 후보 딸은 아마도 알바니아인들이 교육에 있어서 세르비아계인 슬로보단 밀로셰비치 대통령에 의해 차별과 탄압을 받았다는 주장을 강하게 하고 싶어서 사실과 반대로 서술한 것으로 보인다.

셋째, 논문은 일관성이 있어야 하는데 이 논문은 앞뒤가 서로 통하지 않았다. 제목은 ‘분쟁 이후의 교육과 보건의료의 개선방안’ 논문인데, 결론에서 교육에 관한 내용은 전혀 제시되지 않다가 마지막 부분에 ‘교육’이란 단어가 갑자기 등장한 게 이상했다. 교육과 관련된 개선방향이라지만, 본문과 결론은 아무런 관련성이 없었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고교 1학년인 천재 학생이 쓴 영문 논문들이 화제가 되고 있다기에 내 연구와 비슷한 주제이기도 해서 한번 읽어 보려 했지만, 연구자로서 가장 중요한 연구윤리를 따르지 않았기에 크게 실망하고 다른 논문들은 읽어보는 것 자체를 포기하고 말았다. 학술논문은 정식으로 출판된 이후에는 모든 이들에게 접근 가능한 공공재와도 같다. 만약 논문이 연구윤리를 위반했을 경우에는 연구자 개인에게 모든 책임이 돌아가는 게 당연하기에, 학술 연구자들은 자신의 연구 결과를 학술지에 발표하는 데 있어 마지막까지 신중에 신중을 기한다. 연구윤리에 대한 책임은 나이, 성별, 인종 등과 상관없이 모든 연구자에게 적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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