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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왜냐면

누구 위한 ‘학폭위 시스템’인가

등록 2022-07-11 18:31수정 2022-07-12 02:36

‘학교폭력 엄벌’ 위한 학교폭력예방법 시행 19년째
게티이미지뱅크
게티이미지뱅크

[왜냐면] 심창보 | 서울남부교육지원청 학교폭력 담당(변호사)

2004년 제정된 학교폭력예방법은 학교에서 학교폭력 사안이 발생하면 이를 접수해 조사하고, 교육지원청에서 학교폭력대책심의위원회(학폭위)를 개최해 피해학생 보호 조치와 가해학생 교육·선도 조치를 내리도록 하고 있다. 이를 통해 피해학생을 보호하고, 가해학생을 선도·교육하여 건전한 사회구성원으로 육성함을 목표로 한다.

언뜻 그럴듯해 보인다. 언론에서는 큼지막한 학교폭력 사례가 보도되고, 그때마다 엄격한 법 집행의 필요성이 대두된다. 그러나 현실에서 이 제도는 그 목적을 제대로 달성하지 못하고 있다. 다음과 같은 문제점 때문이다.

첫째, 초등학교 저학년 학생들조차 신고되면 조사를 받고 학폭위에 참석해야 하며, 교육청 처분을 받아야 한다.

올 3월 초등학교에 갓 입학한 1학년생이 학교폭력으로 신고됐다. 학폭위에 출석한 가해 추정 학생 ㄱ을 봤을 때, ‘동생이 대신 온 것 아냐’란 의구심이 들 정도였다. 학교에서 조사를 받고 학폭위에 참석해 위원들의 질문을 받기에 ㄱ 학생은 너무나도 어렸다. 학교에서 조사받고, 학폭위에 참석해 위원들 앞에 섰을 때 ㄱ 학생은 상황과 질문을 제대로 이해하고 답했을까.

우리나라 소년법은 만 10살 이상부터 14살 미만까지는 촉법소년으로 분류하고, 만 10살 미만에게는 관련 법적 책임을 지우지 못하도록 하고 있다. 그런데 학교폭력예방법은 ‘교육’이라는 명목으로 만 6살, 만 7살의 어린 학생들에게 가혹한 절차를 강요한다.

둘째, 피해학생 쪽이 원하면 사안이 아무리 경미해도 무조건 학폭위가 개최돼야 한다.

초등학생 ㄴ이 친구 ㄷ을 ‘감자’라는 별명으로 불렀다. 매 학기 ‘나에게 기분 나쁜 말을 하면 학교폭력에 해당할 수 있다’는 교육을 받은 ㄷ은 친구 ㄴ을 학교폭력 가해학생으로 신고했다. 학교에서 ㄴ, ㄷ과 목격 학생 ㄹ, ㅁ, ㅂ을 상대로 수일 동안 사안을 조사해 교육지원청에 학폭위 개최를 요청했고, 교육청에서는 ㄴ, ㄷ과 그 학부모를 참석하게 해 학폭위를 개최했다. 결국 ㄴ 학생에게 ‘서면사과’ 조치가 내려졌다. 이 사건 진행에 교사와 교육청 장학사, 직원들이 수많은 문서를 생성했고, 학폭위 위원 참석 수당으로 100만원 넘는 세금이 쓰였다.

그런데 과연 이런 절차가 ㄴ 학생 피해 보호와 ㄷ 학생 교육에 도움이 됐을까. 친구가 싫어하는 별명을 부르는 아이를 학교에서 선생님이 재량으로 교육하던 때보다, 지금의 절차가 진정 학생들을 위한 것일까.

셋째, 상당수 학폭위는 학부모와 변호사들의 싸움터가 됐다.

며칠 전 사안은 학생들이 서로를 맞신고한 사건이었다. 학생들은 학폭위에 참석하지 않고, 각 학부모와 변호사들만 참석했다. 왜 ‘학생이 오지 않았느냐’는 질문에 양쪽 모두 “교육상 좋지 않을 것 같아서”라고 답했다. ‘학폭위가 개최된 이유는 학생들을 보호하고 교육하기 위함이다’라는 말이 목구멍까지 나왔다가 들어갔다. 법과 절차만이 중시되는 상황에서, 이런 말은 아무런 의미가 없기 때문이다.

이제는 학교의 조사 단계부터 변호사들이 관여한다. 학생들은 변호사들이 첨삭한 ‘피해학생 의견서’와 ‘가해학생 의견서’를 제출한다. 학교와 교육청에는 ‘변호사 의견서’가 제출되고, 학폭위에서는 변호사들이 학생의 입장을 대변한다. 여기에 과연 ‘교육’이 설 자리가 있겠는가.

넷째, 학교는 학교폭력 사안을 조사하고, 교육지원청은 학폭위를 열어 사안을 심의하고 처분을 내리는 시스템 속에서 학교와 교육청은 교육기관이 아니라 수사기관, 사법기관의 역할을 한다.

학교와 교육청은 학생들을 위해 존재한다. 학교폭력 사안 처리도 피해학생을 보호하고, 가해학생을 교육하기 위해 존재한다. 그러나 현장에서는 아무도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가해학생 조치를 받은 학생 쪽에서는 ‘처벌’을 받았다고 생각하고, 변호사와 상의한 뒤 ‘행정처분’ 취소나 변경을 위해 행정심판이나 행정소송을 제기한다.

물론 학교폭력 가운데 심각한 사안들이 있다. 그런데 심각한 사안들은 대부분 수사기관에서 수사를 진행한다. 촉법소년이거나 경미한 사안이라면 가해학생은 보호 처분을, 그렇지 않다면 형사처벌을 받을 것이다.

여기에 더해 필요하다면 피해학생과 가해학생을 가장 잘 알고 있는 학교가 판단해, 가장 적절한 수단으로 행정적 조처를 해 피해학생을 보호하고 가해학생을 선도하면 안 될까? 이것이 과거의 방식이다. 과연 지금의 학교폭력예방법이 과거보다 진일보한, 학생들을 위한 제도라고 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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