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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왜냐면

부동산 금융, 규제완화가 답은 아니다

등록 2023-01-30 18:37수정 2023-01-31 02:35

지난 17일 서울 시내 한 은행에 붙은 대출금리 안내문. 연합뉴스
지난 17일 서울 시내 한 은행에 붙은 대출금리 안내문. 연합뉴스

[왜냐면] 안재환 | 인하대 경영학과 교수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일까? 투기적 거래를 막기 위해 규제를 강화했던 이전 정부와, 시스템 리스크를 막기 위해 그 규제를 풀고 있는 현재 정부의 진정성은 인정할 만하다. 하지만 그때는 옳았지만, 지금은 수정해야 하는 이러한 반복은 대체 어디에서 기인한 것인지 이제는 심각하게 고민할 때가 됐다.

부동산 금융에 국한하면, 국내 금융기관들은 정부의 투기지역 지정에 따라 대출의 한도를 차등 적용해 왔다. 과거에는 주택담보대출비율이라고 해서 집값의 일정 비율로 대출한도를 정하는, 상대적으로 단순한 원칙만 존재했다. 미국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를 전후해 국내 집값이 급등하면서 이른바 ‘처분조건부 대출’이 등장했고, 팬데믹 이후에는 연이은 집값 폭등에 따라 주택가격에 따라 대출 여부와 그 한도를 차등화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촘촘한 대출 규제를 적용하면서 금융기관들이 금융의 기본원칙을 철저히 준수해 왔는지는 의문이 남는다. 부동산 금융의 제1원칙은 차주가 상환할 수 있는 범위 안에서 대출이 이뤄져야 한다는 것이다. 은행은 집값의 일정 비율을 넘는 대출을 당연히 취급할 수 없고, 반대로 차주가 고가의 주택을 매입하더라도 이를 상환할 충분한 담보와 능력이 있다면 거액의 대출을 실행할 수 있다. 금융의 기본에서 생각하자면, 새로 구입하는 주택을 더 높은 가격으로 매도하는 방법 외에 소득으로는 평생 갚을 수 없는 대출을 해주는 금융기관의 행태는 약탈적인 것이다. 지난 부동산 가격 급등기의 금융기관의 대출 행태는 주택담보대출비율 등을 충실히 따랐을지 모르지만, 금융의 원칙으로부터는 크게 벗어났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사실 대출 여부·한도를 정하는 것은 금융기관의 영업 정책에 속한 일이다. 정부는 원칙적으로 여기에 간섭할 수 없고, 은행의 공격적 대출이 건전성을 해칠 우려가 있다면 행정지도의 방식으로 최소한의 범위에서 개입할 수는 있을 것이다. 하지만 지난 십수 년 동안 지속한 정부의 개입은 최소한의 범위를 벗어났고, 금융시장의 자율성을 일부 훼손해 왔다는 주장에서 자유로울 수 없어 보인다. 서민의 주거 안정이라는 목적으로 2013년 이후 전세자금 대출을 확대하고 정부 기관의 보증까지 지원하지 않았더라면, 한 사람이 수십 채의 주택에 갭투자(전세 낀 매매)를 하고 전세보증금을 이용한 사기가 횡횡하는 작금의 사태가 원천적으로 불가능했을 것이라는 주장은 눈여겨 볼만하다.

부동산 금융은 하나의 원칙에 따라 자연스럽게 흘러가야 한다. 서민 주거를 안정시킨다는 명목으로 정부가 대출 시장에 개입하는 것은 그 선의에도 불구하고 결코 좋은 정책이 아니다. 대출 시장의 자율성이 이미 훼손된 상황에서 그동안 존재하던 대출 규제를 일소하는 것은 오히려 투기적 심리를 자극할 우려도 있다. 정부가 실패한 은행과 채무상환 능력을 상실한 차주들을 무한정 구제할 의사와 능력이 없다면, 개입과 방기를 계속 반복하는 것은 무책임하게 보인다. 따라서 지금 대두하는 부동산 시스템 리스크에 대한 우려를, 결코 서민에게 대출을 확대하는 방식으로 대응해서는 안 된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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