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냐면] 김재림 | 코칭심리치유연구소 소장
“당신은 누구십니까?” 당황스러운 질문일 것이다. 누구의 아내, 누구의 엄마, 이런 것을 떼고 나면 어디에 사는 아무개 정도 남을까. 그것들이 당신을 당신이 되도록 하지 않는다. 질문을 달리해보자. “당신은 어떤 사람인가요?” 잠시 침묵이 흘러도 좋다. 흙탕물이 시간이 지나며 무거운 흙은 바닥에 가라앉고, 맑은 물이 올라오는 것처럼 내 마음을 가만히 바라보면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인다.
요즘 내가 잠은 잘 자는지, 어디에다 시간과 에너지를 쏟고 있는지, 무엇 때문에 힘들어하는지, 나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무엇인지 들어주자. 육아하는 엄마라면 오롯이 혼자 시간을 가지는 일이 얼마나 간절한지 알 것이다. 힘들어하는 이웃에게는 기꺼이 위로를 전하면서, 정작 나에게 필요한 배려와 존중은 우선순위 어디쯤 있던가. 그래서 내가 나에게 편지를 쓴다는 것은 100% 내가 내 편이 되는 일이다.
내가 듣고 싶은 말은 그냥 해주면 된다. 허락이나 동의를 받을 필요 없다. 혹여나 말실수하지 않을까, 다른 사람이 내 말을 옮길까,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마음을 관찰하고 보살피는 일은 몸 건강을 챙기려 비타민 챙겨 먹는 것과 다르지 않다. 내 마음이 상처와 불안에 억눌려 있으면, 우리는 다른 사람의 말을 제대로 듣지 못하기 때문이다. 건강한 소통은 나와 관계 맺기부터 시작이다.
편지 형식은 자유롭다. 누구에게 보고하기 위해 쓰는 글이 아니다. 초고를 쓰고 다시 고쳐 쓰는 수고스러움도 없다. 마트 갈 때 편안한 옷차림을 하듯, 나에게 편한 옷이 나에게 맞는 글이다. 분량이 3줄이어도 괜찮다. 글이 짧다고 해서 글에 담긴 진심까지 가벼운 건 아니다. 그 말을 자신에게 해주기까지 얼마나 망설여 왔는지 적어도 당신 자신은 알아줘야 한다.
편지 쓰기를 쉽게 시작하려면, 글 쓰는 시간을 정해두는 것도 방법이다. 10분이라는 마감 시간을 두고 쓰다 보면, 한정된 시간이기에 부담 없이 글을 써내려갈 수 있다. 첫 문장을 꺼내기까지 9분을 쓰더라도 말이다. 어쩌면 말을 꺼내는 데 필요한 용기와 기다림 때문에 우리는 자신에게 편지를 쓰는지도 모른다.
내 마음을 표현하기 어렵다면, 자문자답하는 것도 방법이다. 어린 시절 학교 숙제로 일기 쓸 때도 매일 재미있는 일이 일어나진 않았다. 그렇지만 내 마음은 날씨처럼 매일 달라진다. “오늘 아침 기분은 어땠어?” “그랬구나. 어땠는데?” “지금 이 순간 감사한 일은 무엇이 있니?”
이 글을 쓰고 있는 나에게도 물어본다. “지금 기분은 어떠니?” “나…, 꽤 잘 산 것 같아.” 완벽하지 않은 나날을 까맣게 지우지 않고, 꼬옥 안아주고 싶다. 우리는 저마다 온 힘을 다해 나 자신이 되어가는 여정을 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