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 동두천 옛 성병관리소 건물. 동두천시 제공
[왜냐면] 김대용 | 경기북부평화시민행동 공동대표
지난해 9월 대법원은 미군 기지촌 위안부에 대해 국가가 구조적 폭력을 행사했고, 위안부는 그 폭력의 피해자라고 인정했다. 국가는 미군 위안부 여성에게 ‘애국자’ 혹은 ‘민간 외교관’이라 추켜세우며 성매매를 독려했고 성병으로부터 깨끗한 여성을 미군에 상납하기 위해 미군이 있는 곳에 성병관리소를 세웠다. 국가가 성매매를 체계적으로 관리한 것이다. 경기 동두천 성병관리소는 1970년대 초반에 세워져 20년 넘게 운영했다. 어떤 지역은 2000년대 초까지 운영한 곳도 있다. 현재 다른 지역의 성병관리소는 다 사라지고 유일하게 동두천에만 남아 있다. 위안부는 주마다 2차례씩 성병검사를 받아야 했다. 검사 과정은 치욕적이었고, 성병에 걸린 여성은 성병관리소(낙검자수용소)에 수용됐다. 미국인을 기준으로 한 고단위 항생제가 일률적으로 투여됐고 여성들은 이로 인한 부작용으로 고통받거나 심한 경우 목숨을 잃기도 했다.
최근 동두천시가 성병관리소가 있는 소요산 초입 산자락을 학교법인 신흥으로부터 매입한다는 소식이 들렸다. 그런데 매입이 채 이뤄지기도 전에 한 지역 언론이 ‘동두천시, 도심 속 흉물 성병관리소 없앤다’고 보도했다. 건물 철거에 놀라 찾아간 성병관리소 인근에는 철거를 알리는 계고장이 여기저기 붙어 있었다. 무엇이 급해 건물 철거부터 한단 말인가? 동두천시는 그 땅을 어떻게 사용할지 아무런 계획도 아직 없는데 말이다. 시민사회, 역사 연구자, 시의회, 시청 관계자 등 다양한 사람들의 의견을 듣고 판단해도 늦지 않은데 말이다.
알아보니 철거 계획은 아직 없다 한다. 가슴을 쓸어내렸다.
장소와 건물이 사라지면 그곳이 갖고 있던 역사적 사실도 기억에서 멀어진다. 기억에서 사라진 역사는 다시 반복될 수 있다. 그래서 많은 나라가 지나온 과거의 아픔을 지우지 않고 보존하는 것이다. 독일은 유태인 학살이 일어난 수용소들을 원형 그대로 보존하며 반성과 다짐의 장으로 삼는다. 캄보디아의 킬링필드는 어떤가? 학살당한 사람들의 유골을 전시해 역사를 알리고 인권과 정의에 대한 교육의 장으로 삼고 있지 않은가?
전범국 일본이 아닌 조선이 반으로 갈라져 전쟁의 아픔을 겪었고, 이를 계기로 미군이 주둔하게 되면서 수많은 범죄의 대상이 되었던 한반도. 한국 여성에 대한 미군의 태도는 한반도에 대한 미국의 태도를 반영하는 것이었다. 여기에 더해 국민을 보호해야 하는 책임을 방기한 국가의 잘못을 우리는 알고 있다. 동두천 성병관리소를 없애는 일은 이런 역사의 흔적을 지우는 일이다.
경기도의 의뢰를 받아 ‘경기도 기지촌 여성 생활실태 및 지원정책연구’를 실시한 경기도여성가족재단은 자료집에서 “동두천시 성병관리소는 한국사에 기록할 만한 가치가 있는 건조물로서 근대건축문화유산으로 등록하여 보존하는 것이 필요하다”며 “경기도가 구입해 경기도여성인권평화박물관으로 조성하라”고 제언했다. 그렇다. 마지막 성병관리소가 사라져서는 안 된다. 문화유산으로 보존해 기지촌역사박물관으로, 인권과 평화를 위한 교육의 장으로 활용해야 한다. 앞서간 사람들의 아픔과 실수를 기억해 새로운 미래를 설계하는 밑거름으로 삼아야 한다. 그래야 한미 관계가 좀 더 평등을 향하고, 더 나은 사회를 희망할 수 있지 않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