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종수 신임 국가수사본부장이 29일 서대문구 경찰청에서 열린 취임식에서 국기에 대한 경례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왜냐면] 이상식 | 전 부산지방경찰청장
우종수 신임 국가수사본부장이 29일 취임했다. 정순신 내정자가 아들의 학교폭력 문제로 국민의 공분을 사 물러난 지 한 달 만이다. 국가수사본부는 3만여 수사경찰관으로 구성된 국내 최대 수사기관이다. 수사권 조정으로 영장청구를 제외하고는 수사의 모든 영역에서 독자적 수사가 가능해졌다. 내년부터는 대공수사권까지 이양받게 된다. 국수본부장은 경찰청장보다 한 계급 낮은 치안정감이지만 수사에 관한 한 18개 시도지방경찰청장을 지휘할 수 있는 막강한 자리다.
정순신에게 아들의 학교폭력을 둘러싼 치명적 결함이 있었음에도 대통령이 임명을 강행하려 했던 것은 국수본부장이 그만큼 중요한 자리기에 믿을 만한 측근을 보내고 싶었기 때문일 것이다.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이 경찰국을 신설해 제도적 통제 수단은 확보했지만 부족하다고 본 것이다. 아예 검사 출신을 국수본부장으로 보내 ‘좌 검찰, 우 경찰’의 양대 통치 수단을 완성할 계획이었다. 그러나 분노한 민심에 놀라 이틀 만에 임명을 취소했고 이번에는 내부 인사를 발탁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내가 아는 우 본부장은 반듯한 사람이다. 그러나 그가 정권과 권력으로부터의 외압과 회유를 버텨낼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경찰국 설치에 반대하는 총경들을 없는 자리를 만들어내면서까지 대거 좌천시키고 노골적인 ‘영남 우대, 호남 홀대’ 인사를 아무렇지도 않게 해치운 경찰의 전력이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해서라도 손아귀에 넣고 싶은 것이 경찰 수사권인 것이다.
그러나 정권은 유한하고 역사는 유구하다. 우 본부장은 눈앞의 영달보다는 긴 호흡으로 멀리 봐야 한다. 경찰의 미래, 무엇보다 경찰의 존재 이유인 국민을 생각해야 할 것이다.
우종수 본부장의 첫 번째 과제는 외압을 막아내고 공정한 수사가 이루어질 수 있도록 수사 경찰을 지휘하는 것이다. 정권이 바뀐 뒤 경찰은 재빠르게 코드를 맞췄다. 김혜경 씨의 ‘법인카드 유용 의혹’ 사건을 대형 권력형 비리 수사하듯 129곳이나 압수수색했지만 쥐꼬리만 한 수사결과를 내놓았을 뿐이다. 이미 불송치 처분한 성남에프시(FC) 사건을 수사부서까지 바꿔가면서까지 재수사해 결론을 바꿔 송치했다. 이에 비해 여론이 비등했던 김건희 여사 관련 사건에 대해서는 한 차례 소환이나 압수수색도 없이 모조리 혐의없음으로 불송치했다. 편파 수사의 끝판을 보여준 것이다.
지금 경찰이 수사 중인 정권 관련 사건은 대통령실 이전 천공 개입 의혹, 김건희 주가조작 관련 명예훼손, 청담동 심야 술자리 의혹, 통계청 통계조작 의혹 등이 있다. 경찰이 수사할 정권 관련 사건들은 계속 증가할 것으로 예상한다. 좌고우면하면서 정권의 눈치를 보지 말고 오로지 공정의 잣대에만 의지해 수사해야 한다. 힘들고 외롭겠지만 조직의 백년대계를 위한다는 각오와 신념을 가진다면 불가능한 일도 아니다.
두 번째 과제는 수사 경찰 인력증원과 처우개선이다. 수사권 조정으로 조직 전체의 자부심은 높아졌다. 그러나 정작 당사자인 수사경찰관들의 사기 저하는 심각한 수준이라고 한다. 경찰이 책임지고 수사를 종결해야 하므로 업무량은 폭증했지만, 수사 인력은 그대로이고 처우도 나아진 게 없으니 사기가 저하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유능한 수사관들은 수사부서를 떠나 편한 부서로 옮기고 그 자리를 경험 없는 신참들이 대신하다 보니 수사에 대한 신뢰도가 저하되고 처리기한도 늦어지는 악순환에 빠지게 되는 것이다.
일단 수사 인력을 늘려야 한다. 경찰은 아직도 집회·시위에 대비한 경비부대에 너무 많은 인력을 배치하고 있다. 불법 폭력시위가 대폭 줄어든 마당에 경비부대를 과감히 줄여 수사부서로 인력을 전환해야 한다. 추가 증원도 필요하다면 해야 한다. 격무를 사명감으로 버티던 시대는 지났다. 합당한 인센티브(혜택)를 제공해야 한다. 그래야 유능한 수사관들이 몰리고 수사의 질이 높아져 국민에게 제대로 된 수사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다.
국수본이 경찰 전체의 명운을 짊어지는 시대가 됐다. 본부장의 중립성을 보장하기 위해 2년 임기를 보장하고 권력 줄서기를 막기 위해 경찰청장으로의 승진은 불가능하도록 했다. 승진을 위해 권력을 쳐다보지 않아도 되니 마음먹기 따라 소신 있는 행보가 가능하도록 장치를 마련해 놓은 것이다. 신임 국수본부장에게 위기와 기회가 동시에 기다리고 있다. 어느 쪽을 선택할 것인지는 오로지 본인에게 달려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