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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왜냐면

헌재 심판대 오른 국가보안법, 전쟁 위기에도 집단지성 막아

등록 2023-04-12 18:38수정 2023-05-04 18:44

국가보안법 제2조 제1항 등에 대한 위헌소원 공개변론이 열린 지난해 9월15일 오후 서울 재동 헌법재판소 앞에서 국가보안법폐지국민행동 관계자들이 기자회견을 열어 국가보안법 폐지를 촉구하고 있다. 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국가보안법 제2조 제1항 등에 대한 위헌소원 공개변론이 열린 지난해 9월15일 오후 서울 재동 헌법재판소 앞에서 국가보안법폐지국민행동 관계자들이 기자회견을 열어 국가보안법 폐지를 촉구하고 있다. 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왜냐면]
고승우 | 민언련 고문·언론사회학 박사

한·미와 북한이 서로 자극하는 식으로 벌이는 군사행동과 무력시위를 어떤 틀과 내용으로 분석, 전망하는 것이 정답인가? 한반도 상황은 남북분단으로 비롯했다는 점, 북한은 국가보안법(보안법)에 의해 궤멸시켜야 할 반국가단체라는 점에서 국내 대중매체의 보도와 전문가의 논평 등은 그 범위가 제한적이다.

보안법을 의식하는 한, 북한은 주적이라는 관점에서 현 한반도 군사 상황을 설명하고 전망할 수밖에 없다. 그것은 객관적이라기보다 북한 궤멸이라는 목표의 달성에 기여하는 범위를 넘기 어렵다. 보안법의 조항 가운데 문제가 많았던 것으로 지탄받던 일부 조항이 위헌 심판 대상이 돼 헌법재판소에서 심의하고 있다. 헌재가 헌법에 위반되는지 여부를 심판하는 대상은 보안법 2조 1항 반국가단체 조항, 7조 1항 이적행위 조항, 7조 5항 이적표현물 조항이다.

한반도 분단 상황과 군사적 대치 등에 대한 글과 말을 지속적으로 공표하려 할 때, 위 3개 조항의 현실적 강제력을 인식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얼마 전부터 노동계를 중심으로 한 간첩단 사건에 대한 피의 사실이 공표되고 있다는 점과 과거 헌재가 관련 조항에 대해 여러 차례 합헌 결정을 한 사실이 있어 위헌 결정 가능성을 예단키는 어렵다.

보안법은 북한 지역 전부, 주민 전체를 반국가단체 지역과 그 단체원으로 규정하고 있어 북한은 숨소리조차 반국가적이라는 우스갯소리도 나올 정도다. 북한이 이러이러한 것은 잘못이지만 저러저러한 것은 잘한 것 아니냐 한다든지, 옛 소설 내용처럼 적장이라 해도 칭송받을 일이 있으면 그렇게 대접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식은 결코 허용할 수 없는 먼 나라 이야기일 뿐이다. 고무 찬양의 잣대로 유무죄가 가려져야 할 처지를 피하기 위해서는 판단을 중단하든지, 입을 다물어야 한다.

오늘날 한반도 위기는 핵전쟁 가능성에 대한 것이다. 핵무기의 파괴력은 히로시마의 경우 등에서 확인된 바와 같이 ‘전멸’, ‘산자가 죽은 자를 부러워하는 생지옥’에 다름 아니다. 3차 대전으로 비화해 인류가 전멸할 수도 있다. 이런 상황이지만 정치권, 언론, 학계, 시민사회 단체 등은 조용하다. 모두 알아서 각자 머리를 굴리고 있을 뿐 합리적 의심조차 공론화하지 않는다.

북한 핵무기 때문에 전쟁범죄도 부인하는 일본에게 굴욕외교를 하면서까지 동맹체제로 가는 것이 최선의 선택인지, 한국의 군사적 주권을 대행하는 미국이 앞장선 초강경 대북 전략에 한국은 그냥 따라만 가면 되는지, 박정희·김대중 전 대통령 등이 남북 화해협력을 통해 전쟁을 방지하려 했던 노력은 완전 헛발질이었는지, 전쟁이 과연 유일한 미래여야 하는지, 전쟁이 나면 수도권 주민의 안전 문제는 어떻게 되는지, 만약 핵전쟁이 발생하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전쟁으로 통일이 가능한지 등에 대한 질문은 찾아볼 수 없다.

자기도 죽고 주변은 물론 자손도 다 피해를 보거나 자칫 3차 세계대전으로 비화할지 모를 한반도 미래의 가능성에 대해 공론화를 통해 묘수를 찾아야 한다. 헌법 1조 2항은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고 되어 있지만 국민의 생사를 결판낼 상황에 대한 국민 주권은 보안법에 의해 완전히 봉쇄돼 있다. 수십 년 전 동서 이념 대결이 종식하고 21세기 들어 케이팝(K-POP)이 세계를 주름잡는 상황에서 보안법과 같은 야만적 법이 존재하고 거대 여야가 21대 국회 회기말까지 논의를 중단키로 한 것은 주권자인 국민을 개돼지로 보는 작태에 불과하다.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처럼 일단 전쟁이 터지면 군 통수권자와 그 지배체제는 국민의 생살여탈권을 집행하는 역할을 하고, 국민은 국방의무에 동원된다. 전쟁은 적과 우군을 선과 악으로 구분하고 생과 사만이 허용되는 극한 상황이다. 인간이 처할 수 있는 최악의 비극이며 불행이다. 전쟁 위기에 처한 현실에 대한 과학적이고 객관적인 분석과 전망을 불허한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 자기 자신은 물론 남북한 주민이 전멸할지 모를 위기에서 남의 나라 불 보듯 하는 태도가 강요되는 비극은 이제 청산돼야 한다.

사상과 표현의 자유를 제한하는 보안법 때문에 한반도의 위기 상황에서도 집단지성의 효과를 기대하기 어렵다. 이 법에 따라 위기 해결의 방향은 북한 궤멸로 정해져 있고 다른 견해는 국론분열, 이적행위, 종북, 자중지란 등으로 규탄받기 마련이다. 이 법이 수십 년 동안 지속하면서 고정관념이 돼 버렸다. 단지 군만이 전쟁을 막고 유사시 적을 궤멸시킬 전략 수립과 훈련에 분주하고, 언론은 마치 전쟁 게임처럼 중계방송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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