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이 지난달 23일 정부서울청사 별관에서 ‘노동시장 활력 제고를 위한 킬러규제 혁파 방안'에 대해 발표하고 있다. 연합뉴스
[왜냐면] 이영 | 남양주시외국인복지센터장
정부가 외국인노동자지원센터의 2024년도 예산을 전액 삭감했다. 외국인노동자지원센터에서 종사했던 한 사람으로 내년 예산이 0원이라는 소식에 황망하고 서글프다. 정부는 좀 더 효율성을 높인 통합서비스를 제공하겠다는 미사여구를 나열하고 있지만, 이주 현장의 현실과는 먼 나라 이야기다.
지난해 법무부의 ‘이민자 체류 실태 및 고용조사’를 보면, 국내 취업 이민자는 84만3천 명이다. 42만 명이 넘는 미등록 이민자를 포함하면 120만 명 정도가 취업 상태에 있다. 120만 명이라면 지방 광역시 인구 수준이다. 이를 뒷받침하는 예산과 행정 지원이 구축돼 있을까? 결혼이민자 14만 명을 대상으로 하는 여성가족부의 다문화가족지원센터는 217곳에 달한다. 반면 120만 명에 이르는 취업(노동) 이민자를 위해서는 전국에 거점 외국인노동자지원센터 9곳, 외국인력상담센터 1곳, 소지역센터 36곳을 운영하고 있다. 턱없이 부족한 상태다.
그런데 더 큰 문제가 있다. 정부가 내놓는 저출산·고령화에 따른 인구 위기의 해법이 외국인력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는 점이다. 최근 고용노동부는 준숙련제도 10년+α 개선 방안을, 서울시는 가사노동 시범사업을 내놓았다. 법무부는 지역특성화 비자 시범사업, 계절노동자와 숙련기능인력(E-7-4) 비자 확대, 유학생 졸업 뒤 취업 활동 등으로 모든 저임금과 열악한 노동 구조에 외국인력을 몰아넣고 있다. 이처럼 저출산·고령화와 인구 위기에 따라 외국인력은 전방위적으로 확대하는 반면, 외국인력 지원은 역행해 축소하고 있다. 외국인력 지원 축소는 등록 체류자의 미등록을 유발해 사회적 비용과 갈등을 키울 수 있다.
올해 미등록 체류자는 42만 명을 넘어섰다. 출입국외국인정책본부의 코로나19 팬데믹 기간 통계 자료를 보면, 2019년 약 252만 명이었던 등록 체류자는 2020년 203만 명으로 1년 만에 50만 명이 줄었다. 그런데 미등록 체류자는 오히려 증가했다. 외국인력의 도입체계는 있지만, 체류 관리체계가 허술해 미등록 체류자를 양산하기 때문이다. 관리체계 부실로 미등록 체류자가 계속 발생하는데, 저출산·고령화와 인구 위기의 방안으로 외국인력을 확대하는 것은 깨진 독에 물을 붓는 어리석음을 범하는 일이다.
현행 외국인력 제도는 정주화 금지가 원칙인 단기·비숙련 순환제도다. 하지만 이미 순환은 정체돼 작동하지 않고 있다. 여기에 다시 외국인력을 채우다 보면 과부하가 걸려 붕괴할 수밖에 없다. 외국인력 제도가 선순환할 수 있는 구조가 절실히 필요한 때다. 저출산·고령화와 인구 위기 극복에 있어 외국인력이 모든 것을 해소할 수 있다는 환상에서 깨어나야 한다. 외국인력 도입에 몰두할 것이 아니라, 외국인력에 대한 관리체계 시스템을 구축하고 정비하는 작업을 우선해야 한다.
내년 외국인노동자지원센터 예산 0원 편성은 정부가 외국인력 관리 자체를 포기한 무능한 처사다. 예산이 0원이라면 외국인력 관리 능력은 0점이다. 선순환할 수 있는 외국인력 구조와 외국인력을 제대로 지원할 수 있는 체계적인 행정 체계 구축을 통해 선진 이민 국가로 도약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