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번 양보해 “영어를 잘하고 통상 분야에 대한 해박한 지식과 하버드대학 경제학 박사 등의 경력으로 외국에서도 실력을 인정받고 있다”는 내용은 한씨를 설명하는 정보로 타당하다. 그러나, 단순히 어느 학교 출신이라는 것도 아니고 아무개와 경기고 63회 동기동창이라고 말하는 것은 학벌을 조장하고 패거리문화를 앞서서 만드는 것이다. 학력·학벌 철폐를 위해 노력해 온 우리의 의지가 전반적으로 사회를 바꾸지는 못한다고 할 지라도, 최소한 한겨레는 이러지 말아야 한다. 나는 한겨레의 독자로서, 이라크 파병과 같은 거시적 담론뿐만 아니라 우리 사회의 세세한 부분까지를 살피고 배려할 줄 아는 자세를 기자들에게 요구한다. 그럴 만한 사람들이니까. 피재현/시인, 민족문학작가회의 회원
왜냐면 |
학벌철폐, 좀더 관심기울여야 |
15일치 3면에 실린 기사는 경제부총리에 임명된 한덕수씨를 소개하면서 누구 누구와 경기고 63회 동기동창이라고 썼다. 단순히 어느 학교 출신이라는 것도 아니고 이렇게까지 하는 건 학벌을 조장하고 패거리문화를 앞서서 만드는 것이다.
우리 사회의 가장 고질적이고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를 꼽으라면 십중팔구는 교육 문제를 꼽을 것이다. 우리 사회는 강력한 국가 교육권이 행사되는 공교육 중심 체제이면서도 사교육 시장이 공교육을 능가하고 학교 현장은 학력 중심, 학교 폭력, 서열화의 문제를 앓고 있다.
그런가 하면 사회는 교육 현실을 반영하듯 학벌·학력 중심의 사회가 돼 있다. 학교 현장의 온갖 문제와 사회에서의 학력·학벌주의는 끊을 수 없는 고리처럼 맞물려 돌아가며 우리 사회의 차별과 교육문제를 재생산해 내고 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학력·학벌 사회를 반대하고 나섰고, 능력 중심의 사회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그러나 이런 노력에 찬물을 끼얹는 기사를 발견했다. <한겨레> 3월15일치 3면에 실린 기사는 새 경제부총리에 임명된 한덕수씨를 소개하면서 한씨가 “청와대 정무수석을 지낸 유인태 열린우리당 의원, 정우성 청와대 외교보좌관, 정문수 경제보좌관이 경기고 63회 동기동창이다”라고 글을 맺고 있다. 순간, 내 눈이 의심스럽고 불쾌한 기분이 맑은 아침공기를 혼탁하게 만들어버렸다.
한겨레는 우리에게 유일하다시피 한 진보적 일간지다. 신문의 논조는 이라크 파병을 반대하고, 과거사 청산을 지원하고, 다양한 인권문제에 각별한 관심을 보여주고 있다. 그래서 나는 창간 이후 지금껏 한겨레 독자로 남아 있다.
분명 한겨레는 진보적이다. 그러나, 여전히 사회적 관행과 보수적 시각에서 탈피하지 못한 면이 있다. 따지고 찾는다면 이보다 더한 문제가 있을 수 있고, 또한 있어 왔겠지만, 이 기사의 마지막 넉 줄은 나에게 한겨레의 정체성을 심각하게 의심하는 단서를 제공했다.
신문은, 혹은 언론은 사회적 공기로 사실을 보도하고 진실을 말하는 데서 나아가 여론을 이끌어가고 사회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도덕성과 책무성을 지닌다. 한덕수씨가 이러저런 사람들과 경기고 63회 동기동창이라는 사실이 정보임은 틀림없지만, 그것이 고작 2단 기사의 넉 줄이나 차지할 만큼 중요한 정보는 아니다. 더군다나, 그동안 한겨레는 참교육학부모회, 학벌없는 사회, 전교조 등 이 사회에서 학력과 학벌로 차별받는 부당함을 없애려고 노력해 온 많은 시민사회 단체 편에 서지 않았던가!
백번 양보해 “영어를 잘하고 통상 분야에 대한 해박한 지식과 하버드대학 경제학 박사 등의 경력으로 외국에서도 실력을 인정받고 있다”는 내용은 한씨를 설명하는 정보로 타당하다. 그러나, 단순히 어느 학교 출신이라는 것도 아니고 아무개와 경기고 63회 동기동창이라고 말하는 것은 학벌을 조장하고 패거리문화를 앞서서 만드는 것이다. 학력·학벌 철폐를 위해 노력해 온 우리의 의지가 전반적으로 사회를 바꾸지는 못한다고 할 지라도, 최소한 한겨레는 이러지 말아야 한다. 나는 한겨레의 독자로서, 이라크 파병과 같은 거시적 담론뿐만 아니라 우리 사회의 세세한 부분까지를 살피고 배려할 줄 아는 자세를 기자들에게 요구한다. 그럴 만한 사람들이니까. 피재현/시인, 민족문학작가회의 회원
백번 양보해 “영어를 잘하고 통상 분야에 대한 해박한 지식과 하버드대학 경제학 박사 등의 경력으로 외국에서도 실력을 인정받고 있다”는 내용은 한씨를 설명하는 정보로 타당하다. 그러나, 단순히 어느 학교 출신이라는 것도 아니고 아무개와 경기고 63회 동기동창이라고 말하는 것은 학벌을 조장하고 패거리문화를 앞서서 만드는 것이다. 학력·학벌 철폐를 위해 노력해 온 우리의 의지가 전반적으로 사회를 바꾸지는 못한다고 할 지라도, 최소한 한겨레는 이러지 말아야 한다. 나는 한겨레의 독자로서, 이라크 파병과 같은 거시적 담론뿐만 아니라 우리 사회의 세세한 부분까지를 살피고 배려할 줄 아는 자세를 기자들에게 요구한다. 그럴 만한 사람들이니까. 피재현/시인, 민족문학작가회의 회원
기사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