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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냐면] 장애아 보육정책, 이대로 좋은가 / 이정미

등록 2007-04-09 17:36

왜냐면
모든 아동에게 유아기가 중요하지만 장애아동의 유아기는 더욱 중요하다. 유아기는 신체적·정신적 발달이 가장 활발한 시기이기 때문이다. 유아기에 개별 아동의 발달 수준과 장애의 특성을 고려한 효과적인 교육과 치료 프로그램이 아동의 장애를 최소화하는 데 핵심 구실을 한다는 것은 이미 여러 연구에서 밝혀졌다.

우리나라는 이미 장애 유아를 대상으로 무상보육을 하고 있다. 이제는 효과적인 중재 프로그램이나 특수교육 등 보육의 내용적인 면을 더욱 전문적이고 체계적으로 채우는 방안을 고민해야 할 시기다. 유아의 개별적인 교육적 요구를 고려하여 적절한 교육 프로그램을 실시하고 그 결과를 지속적으로 평가하여 교육 내용과 과정을 수정·보완하여야 한다. 아울러 물리치료와 언어치료 등 관련 서비스가 필요한 경우에는 이를 제공하여야 한다.

미국 오리건주에서는 장애 정도를 고려하여 조기중재 혹은 특수교육센터에서 분리교육을 받거나 지역사회의 보육시설에서 통합교육을 받게 한다. 특히 자폐증으로 진단된 경우는 조기중재센터에서 자폐아동 프로그램을 별도로 운영하고, 통합을 할 준비가 덜 된 아동들을 대상으로 언어치료와 사회성 프로그램을 진행한다. 장애 정도가 가벼워 지역사회 보육센터에 배치된 아동들은 조기중재 전문가들이 정기적으로 방문하여 아동이 보육 프로그램에 잘 적응하는지, 적절한 발달이 이루어지고 있는지, 보육 프로그램이 아동 수준과 요구에 적합한지 확인하고 담임교사와 상담하고, 교육과정에서 고려해야 할 내용들을 제시한다.

우리나라에는 유아의 장애 영역과 정도, 발달 수준 등을 고려하여 전문가들과 부모가 충분한 논의를 통해 적절한 교육환경에 배치하는 절차와 책임기관이 없다.

그러나 우리나라에는 유아의 장애 영역과 정도, 발달 수준 등을 고려하여 전문가들과 부모가 충분한 논의를 통해 적절한 교육환경에 배치하여야 하는 절차와 책임기관 혹은 위원회가 없다. 전국에 100곳이 넘는 장애아 전담 보육시설의 전문성을 향상시키지 못한 채 보육교사에게 장애아동 교육을 맡겨놓고 있다. 대학에서 특수교육을 전공한 교사가 장애 유아 학급을 운영하고 자폐증 전문가, 작업치료사, 언어치료사 등이 정기적으로 방문하여 개별 아동의 교육 계획이나 내용에 대해 조언을 하는 나라와 큰 차이가 있다.

장애 유아에게 보육은 교육과 구분할 수 없으며 교육의 수준은 교사의 수준을 넘어설 수 없다. 여성가족부는 장애 유아에 대한 특수교육이나 조기중재를 전공하지 않은 보육교사가 장애아동에게 적절한 교육 프로그램을 제공할 수 있는지 고려해야 한다. 이들은 보수교육조차 받지 않은 채 장애아동의 담임교사가 되어 그들의 일생에 가장 중요한 유아기 교육을 책임지고 있다. 따라서 장애 유아의 개별적 요구를 고려하여 기능 수준을 향상시켜 장애를 최소화하기보다는 하루에 일정 시간을 보육하는 것에 만족하는 것으로 보인다.

장애아동에게 유아기는 이후 어떤 시기보다 적절한 교육의 효과가 나타난다. 장애아동의 보육은 단지 돌보는 수준에 그쳐선 안 된다. 장애의 위험이 있는 혹은 장애가 있는 아동들에게 체계적이고 적절한 교육 프로그램을 제공하고 지속적인 평가를 통해 정상적 발달을 할 수 있거나 장애를 최소화할 수 있도록 하는 체계를 갖추어야 할 것이다.


이정미 /가톨릭상지대 유아특수재활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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