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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5.03.30 17:00 수정 : 2005.03.30 17:00

학교는 다방이 아니다. 그런데 나와 같은 학교 비정규직들에게 차 접대는 일상이 되고 있다. 학교 행사가 있거나 손님이 오면 의례히 해야 하는 차 접대, 어쩔 때는 하루에 50잔 이상 차를 타서 나른 적도 있다. 뿐만 아니라 행사 때 다과 준비에서부터 정리정돈까지. 나는 행정실 직원인가 학교 파출부인가?

나는 지금 대전의 한 중학교에서 행정실 행정보조로 일을 하고 있다. 처음에는 아이들과 함께 있는 교육 공간에서 일한다는 것이 너무 좋았다. 하지만 일하기 시작한 뒤 내가 한 일을 돌이켜보면 참으로 한숨이 나온다.

원래 내가 해야 하는 업무는 행정보조다. 그러나 갈수록 내가 행정보조로 입사를 한 건지, 아니면 청소부나 학교잡부로 입사를 한 건지 분간이 안 갔다. 나는 아침 출근을 하면 걸레를 들고 책상 청소를 하기 시작한다. 교장실 청소, 행정실 청소를 하고, 지금은 용역을 쓰지만 전에는 화장실 청소도 하였다. 하루종일 청소만 하다가 일을 마친 적도 있다.

학교는 다방이 아니다. 그런데 나와 같은 학교 비정규직들에게 차 접대 일은 일상이 되고 있다. 학교 행사가 있거나 손님이 오면 으레 해야 하는 차 접대, 어느 날은 하루에 50잔 이상 차를 타서 나른 적도 있다. 교장실 접대가 아예 업무분장에 있다. 호칭의 경우, 아예 ‘~양’하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다. 그뿐만 아니라 행사 때 다과 준비에서부터 정리정돈까지 나는 행정실 직원인가 학교 파출부인가 의문이 들 때가 많다.

우리에게 잡무의 영역은 대단히 넓다. 학교장의 비서 구실도 잡무영역에 속한다. 담배 심부름, 학교장의 차량 기사 노릇을 하는 경우도 있고, 개인 세금 납부나 개인적인 모임 안내 발송, 심지어 시장보는 일 등 일일이 나열할 수 없는 일들이 학교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해야 하는 일이다. 우리들이 공유하는 카페에는 잡무에 시달리는 수많은 학교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글들이 쏟아진다. 과학보조로 입사했는데 행정보조가 안 나오면 행정실에 가서 앉아 있어야 하고, 교무보조가 안 나오면 교무실에서 일하고 사서 선생님이 안 나오면 도서실에서 일한다. 이것이 학교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근무 현실이다. 과학보조, 전산보조, 행정보조, 교무보조. 모두 다 자신의 고유 업무영역이 있다. 단지 비정규직으로 입사했을 뿐 각각 전문성을 지닌 업무다. 업무의 효율성과 능률은 자신의 업무에 충실하는 과정을 통해 향상되는 것임에도 학교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는 그렇지 못하다.

비정규직이라는 이유로 노골적으로 요구받는 잡무 문제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인권과 고용문제까지 연결되고 있다. 심지어 1년마다 다가오는 재계약 과정에서 화장실 청소나 기타 잡무를 하는 것을 조건으로 재계약을 요구하고 이에 응하지 않으면 해고하는 사례도 생기고 있다. 과학보조가 때에 따라 전산보조도 하고 교무보조도 하는 게 일상화되면 학교 쪽에서는 한 사람이 일을 다할 수 있는 것처럼 보인다. 이것이 교육부에서 추진하는 업무 통합의 배경이 되기도 한다. 나와 같은 학교 비정규직은 비정규직이기 이전에 분명 학교 행정의 한 주체이고 당당한 권리가 있는 노동자로서 보호받아야 할 인권이 있다. 가장 모범적이고 사회규범과 도덕에 충실해야 하는 교육 현장에 비인간적 대우가 만연하고, 잡무에 시달리는 비정규직을 더욱 양산하고 오히려 이용하는 현실이 나와 같은 학교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미래를 더욱 어둡게 하고 있다.

학교에서의 차접대 문화는 가장 먼저 근절되어야 한다. 몇 해 전 차 접대에 시달린 충남의 한 계약직 교사의 사례는 결코 과거의 문제가 될 수 없다. 학교내 자판기 설치나 다른 대안을 내 와서 차 접대와 온갖 잡무에 오늘도 이를 악물고 일하고 있는 전국의 수많은 학교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 숨통을 열어주어야 할 것이다.


김경숙/학교비정규직 노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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