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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냐면] 라인기행: 4대강은 ‘절대반지’가 아니다 / 서해성

등록 2011-08-01 19:26

지난달 2일 운하반대교수모임 견학단이 독일 라인운하의 마지막 갑문인 이페츠하임 댐을 둘러보고 있다.  서해성 제공
지난달 2일 운하반대교수모임 견학단이 독일 라인운하의 마지막 갑문인 이페츠하임 댐을 둘러보고 있다. 서해성 제공
서해성 소설가·성공회대 외래교수
그가 숨 가쁘게 일행을 이끈 곳은
라인운하 옆구리를 잘라낸 지점,
4대강의 앞날이 손에 잡히는 듯했다

라인강에서 4대강의 앞날을 보고 온 서해성 성공회대 외래교수의 글을 싣는다. 서 교수는 지난 6월28일부터 7월9일까지 최열 환경재단 대표, 김정욱 서울대 환경대학원 교수 등 21명으로 구성한 운하반대교수모임 견학단과 함께 독일을 다녀왔다. 라인강을 따라 베를린-슈투트가르트-프라이부르크-취리히 등에서 현지 환경전문가들과 토론하며, 생태계 파괴의 현실과 그 대안을 돌아보았다. 편집자

<니벨룽겐의 반지>는 독일 라인강을 무대로 펼쳐지는 바그너의 대서사극이다. 이 설화는 <반지의 제왕> 원형이기도 하다. 강바닥에 감춰둔 황금을 훔쳐내 반지를 만들어내는 자는 니벨룽겐족이다. 이 절대반지를 둘러싼 암투 속에 숱한 신과 사람들이 사라져간다. 라인강 사람들은 적어도 천년 전부터 강바닥을 뒤집는 일이 재앙임을 알았던 셈이다. 강을 절대반지로 낀 세력의 운명은 여기에 충분히 암시되고 있다. 그 강물이 한반도에서 역류하고 있다.

라인강에 이르렀을 때, 7월 햇볕은 이페츠하임 기슭을 타고 올라왔다. 라인운하 마지막 갑문을 향해 달리는 동안 해는 내내 뒤를 쫓아왔다. 베른하르트 교수(카를스루에공대)는 알자스로 잠시 넘어갔던 버스를 되돌려 낡은 철교 한가운데 독일-프랑스 국경쯤에 멈춰 세웠다. 독일 쪽에서는 골재 채취가 한창이었고, 건너편 프랑스 라인강변에는 흰 배 몇 척이 정박해 있었다. 한국 정부가 모델로 삼고 있다고 입초시에 올리곤 하던 라인운하 현장이었다. 댐을 빠져나온 강물은 사납게 다리 아래를 흘러내려갔다.

“운하는 강 주변을 급격히 사막화합니다. 이페츠하임댐(1977년)만 해도 이듬해부터 하루도 빠짐없이 엄청난 양의 자갈을 쏟아부어 강바닥이 파여 나가는 걸 겨우 막고 있습니다.”

날마다 산 하나씩이 강물 속으로 사라지고 있었다. 물길을 직선으로 흐르게 만든 직강화 탓에 유속은 빠를 수밖에 없었다. 강 안팎 생태 파멸은 물론 홍수와 안개, 농업생산성 하락, 부유물과 수질개선 비용 증가, 그리고 놀랍게도 지하수가 아래로 내려가서 ‘물 위 사막화’를 불러온다. 강물과 연계되어 있는 지하수는 깎여나가는 강바닥을 따라 낮아진다. 직강화는 또 지류와 본류의 물 흐름을 거듭 빨라지게 해 두 물이 한데 충돌하는 걸 피할 수 없어 큰물 지는 일은 몇 곱으로 늘어날 수밖에 없다. 이는 자연이 인공과 자본에 맞서 순리로 돌이키려는 싸움이기도 하다.

‘베’ 교수가 아는 한국말은 오직 한마디였다. 빨리빨리. 운하를 막아내려면 운하업자들보다 발길이 빨라야 한다는 거였다. 그는 한국의 4대강 사업에 긍정적 평가를 내린 유엔환경계획(UNEP)에 얼마 전 항의서한을 보낸 세계적 하천생태계보전 연구자다. 서울 법정에서 열리는 4대강 재판에도 증인으로 참여할 예정인 그가 숨 가쁘게 일행을 이끌고 간 곳은 라인운하의 옆구리를 잘라낸 지점이었다. 강둑에 큰 구멍을 내서 물을 빼내 인공 둠벙(범람원)을 만들어 나무를 심는 등 재자연화를 해야 한다고 처음 주장한 이도 그였다. 간단히 말해, 이곳을 포함해 라인운하는 세 군데를 뜯어낸 참이었다. 4대강의 앞날이 손에 잡히는 듯했다. 독일 정부는 인공 둠벙을 위해 다시 강 주변 땅을 사들여야 했다. 초록색이라고 다 자연이 아니듯 외관만 미끈해진 채 위락과 시각소비물로 전락한 강은 이미 죽은 강이다. 그걸 되살려내고자 몇 군데나마 인공 둠벙으로 물길을 유도해 홍수 방지와 생태복원을 꾀하고 있었다.


“강에 휴식이 없는 연속보는 강을 다 파괴했다는 선언이죠. 라인운하는 완전히 잘못된 것입니다. 내가 알고 있는 4대강 계획은 하천공사도 아니며, 한낱 자연에 대한 강간일 뿐입니다.”

강을 떠나는 버스에 올라와서까지 ‘베’ 교수는 고뇌에 찬 소회를 피력했다. 운하는 만드는 데서 결코 끝나지 않는다는 걸 엠비 정부와 토목자본들이라고 모를 리 없었을 게다. 그들이 착각하고 있는 절대반지는 생태와 공동체 파괴, 재자연화라는 국민 희생을 전제로 한 악마적 이익의 순환고리라고 해도 그닥 어긋난 말이 아닌 줄 안다. 곧 독일환경자연보전연맹(BUND) 대표 바이거 교수(카셀대학)의 격노에 찬 음성이 끈적한 여름 햇살에 엉겨왔다.

“토목·건설회사 말고 경제적 이익은 실질적으로 전무하죠. 4대강이 관광 등 라인운하를 벤치마킹했다는, 이런 거짓말은 1만㎞ 밖에서만 할 수 있습니다.”

운하는 생명과 세금, 민주와 전통,
역사와 창조주의 뜻을 집어삼킨다
설화 속 니벨룽겐족이 그러하였듯

한국은 그 거리만큼 떨어져 있다는 말을 주고받으면서 서로 쓴웃음을 짓는 순간에도 김정욱 교수(서울대 환경대학원장 역임)는 거의 침묵을 지켰다. 최열 대표(환경재단)는 ‘죄’ ‘죄’ ‘죄’라는 말만 거듭 되뇌곤 했다. 한숨을 돌린 건 슈투트가르트에서였다.

바람길은 물이 막힌 곳 저편에서 불어오고 있었다. 바람은 말굽쇠 모양으로 내륙분지를 감돌아 도심으로 스며든다. 남부 독일 공업지대(다임러·크라이슬러·포르셰 등)인 이 도시는 풍속이 초당 2m 정도에 그쳐 오래도록 대기오염이 심각했다. 제2차 세계대전 때 폭격으로 생긴 화재로 연기가 빠져나가는 걸 보면서 바람길을 발견해 녹지축을 조성했다는 속설에서 이곳 시민들이 전쟁 상처를 어떻게 극복해왔는지를 짐작할 수 있었다. 바람길을 터놓기 위해 높게 지을 수 없도록 한 집들의 창문에는 한결같이 샬로지엔(블라인드)이 바깥에 붙어 있었다. 햇볕이 창유리를 통과하기 전에 차단하기 위해서였다.

소음을 줄인 이음새 없는 레일을 지나는 트람 선로 안팎에서 푸른 잔디가 자라고 있는 프라이부르크의 대안활동은 경이로웠다. 세계적으로 이름난 파우반지구가 아니라도 재생가능에너지 사용을 위한 노력은 도시 어디서나 흔히 볼 수 있었다. 프라이부르크가 생태도시로 태어난 건 1970년대 초 인근 빌에 건설하려던 원전계획에 반대하면서였다. 지금도 탈핵을 요구하는 노란 현수막이 한 집 걸러 걸려 있었다. 베를린에서 독일 시민들과 탈핵 시위에 동참했던 터라 감회가 새로웠다. 당시 시민들은 그저 원전 반대운동에 그친 게 아니라 스스로가 냉온방 등에서 에너지 소비를 줄이는 생활을 실천해왔다. 줄여 말해, 이 도시의 집 지붕들은 태양광 전지판이 뒤덮고 있다. 이들이야말로 문명사회 파라오들(태양신 아들)이었다. 문득 전기요금이 사회적 지위를 나타내는 한국 상황을 떠올리자니 절로 맥이 풀렸다.(이재용 삼성전자 상무 자택 월평균 전기요금 2472만원,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 자택 915만원, 정용진 신세계 부회장 한남동 자택 436만원, 이웅렬 코오롱그룹 회장 410만원, 이상 2009년 순위)

재생가능에너지 사용(대체 에너지 의존도 17%)과 산업이 없었다면 현 독일 집권세력의 탈핵 선언(원전 의존도 23%)도 쉽지만은 않았을 터이다. 잘 알다시피 결정적 계기는 올봄 일어난 ‘3·11 대재앙’(후쿠시마 원전 사태)이었다. 독일인들이 지닌 핵 공포의 기원은 미군 핵미사일 배치 역사와 뗄 수가 없다. 이들에게 핵은 한국인들처럼 분단 체험과 함께 작동해왔던 것이다. 1986년에는 체르노빌 원전 폭발로 낙진이 떠밀려왔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독일인들은 ‘버섯 모양의 꿈은 접어라’를 실행에 옮기고 있다. 이는 이미 전 지구적 의제로 떠올랐다.

독일 재생가능에너지 생산지는 ‘북쪽은 바람(풍력), 남쪽은 해(태양광)’로 크게 나눌 수 있다. 풍력발전의 경우 경관 침해(해상풍력은 관광산업)와 최대 길이 80m에 이르는 날개가 돌아가면서 내는 소음, 비행기 접근을 막기 위한 야간조명 등은 발전지역 주민들의 삶을 괴롭히고 있다. 남부 산업지대로 전기를 보내기 위해 설치해야 하는 송전시설이나 선로 매설 등도 건강과 비용 문제 등으로 중대한 갈등조정을 시험하게끔 하고 있다. 아울러 재생가능에너지 분야에서 선두를 달리고 있는 기술국가인 독일의 기술독점과 판매는 앞으로 제3세계의 종속을 야기할 수 있는 소지를 안고 있다. 현재 유럽과 미국이 높여가는 에탄올 정책이 인도네시아 칼리만탄 숲에서 오랑우탄을 쫓아내고 아마존을 국제곡물회사의 콩밭으로 만들어버리고 있는 사태를 되새겨봐야 한다. 몇 해 전 아이티 사람들이 진흙 쿠키를 먹어야 했던 일도 미국 곡물회사가 옥수수를 바이오 에너지로 팔아버리면서 생긴 일이었다. 에너지 생산·소비구조와 자본집중이 일치한다는 사실을 외면하면 자칫 재생가능에너지 논의가 탄소배출권 판매처럼 신자유주의 녹색산업적·기술적 접근에 그칠 수 있음을 명념해 두어야 한다.

길을 돌려 라인·마인·도나우운하 내륙 시작점인 바젤을 지나 취리히 강가에 있는 대학도서관을 찾았다. 로자 룩셈부르크의 박사논문과 스파르타쿠스단 봉기(1919년 1월) 무렵에 배포한 유인물이 먼지를 쓴 채 누워 있었다. 사민당의 하수인들은 봉기 핵심인 로자의 머리를 소총 개머리판으로 으깨어 베를린을 관통하는 란트베어운하에 던져버렸다. 나치를 낳은 바이마르 권력은 그렇게 탄생했다. 자료를 일별하는 동안 길은 다시 첫 출발지 베를린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운하는 생명과 세금, 민주와 전통, 역사와 창조주의 뜻을 집어삼킨다. 절대반지를 벗겨낼 때까지는 니벨룽겐족들이 그러하였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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