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성우 농협중앙회 축산경제 대표이사
한·유럽연합(EU) 및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이 발효된 데 이어 지금 한·중 자유무역협정 협상이 막바지에 와 있다. 한·오스트레일리아, 한·뉴질랜드, 한·캐나다 자유무역협정 협상도 빠르게 진행될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자유무역협정의 기본 틀은 일정 기간을 두고 무역 관세를 철폐함으로써 국가 간 무역을 증진하는 것이다.
우리나라와 자유무역협정을 추진하는 주요 국가들의 가장 큰 관심은 공산품보다는 농축산물과 가공식품에 있다. 특히 미국·오스트레일리아 등 축산 선진국은 부가가치가 높은 육류·유제품 등 축산물과 축산가공품에 관심을 집중하고 있다.
정부는 공산품이나 서비스업의 자유무역이 확대되면 자원이 부족한 우리나라 경제에 큰 도움이 될 것으로 판단하고 자유무역협정을 적극 추진해오고 있다. 그러나 국제경쟁력이 취약한 우리나라 농축산업 분야는 자유무역협정으로 인한 피해가 가장 클 것으로 예상된다.
그런데 자유무역협정보다 더 무서운 것이 있다. 바로 ‘축산업에 대한 규제’다. 지난 2월23일부터 축산업 허가제가 새로 도입되었다. 축산업에서 정한 일정 요건을 갖춘 농가만 축산업을 할 수 있도록 제한하고 있다. 미래 선진 축산업의 실현을 위해 축산인들도 인식을 같이하고 정부의 허가제 도입을 수용하였다.
환경부는 2012년부터 가축분뇨 처리 개선 대책을 수립하고 무허가 축사 규제, 가축분뇨 배출기준 강화, 시정명령 불응 시 과징금 부과 등을 골자로 한 가축분뇨자원화법의 개정을 추진하고 있다. 일부 축산인들의 요구가 받아들여져 보완된 부분도 있기는 하지만 여전히 축산업을 규제하는 것임에는 틀림없다.
축산 현장에서 벌어지는 현상은 훨씬 더 심각하다. 시·군 지방자치단체에서 기초의회를 통과하여 시행되는 조례를 보면 과연 우리나라에서 축산을 하라는 것인지 의심이 갈 정도이다. 실제 사례를 들어보자. 어느 군에서는 주거지역에서 1㎞ 이내에는 축사를 짓지 못한다고 규제하고 있다. 지도를 펼쳐놓고 1㎞ 반경을 그어보면 이 군에서는 새로 축사를 지을 곳이 한 곳도 없을 정도다. 대대로 살아오던 마을에서 이웃 주민들의 불편을 고려하여 마을에서 떨어진 자신의 농지로 축사를 이전하려고 해도 이 거리제한 조례에 저촉되어 옮길 수 없는 현실이다. 또 기존의 축사가 낡고 생산 효율이 떨어져 축사를 증개축하려 해도 행정기관에서 주민의 동의를 받아와야만 허가를 내준다고 하고, 주민 중 한 사람이라도 반대하면 추진할 수 없는 안타까운 현실이다.
물론 환경이 중요한 것은 축산인들도 잘 이해한다. 그래서 축사시설을 개선하여 냄새도 줄이고 분뇨처리시설도 개선하는 등 꾸준히 노력하고 있다. 그러나 이런 일들은 단기간에 개선할 수 있는 것이 아니므로 정부는 시설개선 자금 지원 등을 통하여 독려하고 있다.
축산농가들이 수입 축산물과 대항하기 위하여 시설 환경 개선은 물론이고 가축 개량, 질병 예방, 축산물등급 향상을 위한 사양관리 개선, 사료비 절감, 가축분뇨자원화 등 종합적인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 시점에서 환경 규제를 과도하게 강화하는 것은 축산인의 기를 꺾는 일이다. 그렇지 않아도 농촌에서 마땅히 소득을 올릴 수 있는 품목도 없는 현실에서 축산업마저 과도한 규제에 발목이 묶인다면 농민은 무엇으로 살아갈 것인가.
환경 개선을 위한 정부의 정책 방향이 잘못된 것은 아니지만 농촌경제의 주요 소득원이고 국민의 먹을거리를 책임지고 있는 축산업의 기반을 흔드는 과도한 규제는 개선되어야 한다. 정부 정책은 축산업의 현실을 고려하여 점진적 환경 개선이 될 수 있도록 지원을 늘려가면서 주거환경 개선을 병행해야 한다고 본다. 지역 관점에서 보면 농공단지처럼 시·군별로 몇 군데씩 친환경 축산단지를 조성하여 축산농가가 입주할 수 있도록 하는 방안도 좋은 대안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남성우 농협중앙회 축산경제 대표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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