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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냐면] 누가 코레일에 돌을 던질 수 있나? / 임석민

등록 2013-12-30 18:46수정 2013-12-30 20:29

철도공사(코레일)가 악의 화신이 되어 몰매를 맞고 있다. 코레일은 억울하다. 17조5000억원의 부채는 고속철도 건설, 인천공항철도, 용산 개발, 차량 구입, 회계기준 변경, 벽지노선 및 운임할인 등에 대한 정부 지원금 미지급 등 정책적 요인에서 비롯된 것들이다. 결코 철도 종사자들이 흥청망청 써대며 생긴 부채가 아니다. 코레일은 다른 공기업들에 비해 특별히 잘한 것도 잘못한 것도 아니다. 부채와 적자의 대부분은 정치권력의 갑질이 원인이다.

그동안 이 나라 공기업들은 모두 정치권력의 전리품이었다. 경영은 물론 철도의 ‘ㅊ’ 자도 모를 인물들을 최고경영자(CEO)로 앉혀놓은 정치권력은 이제 와서 방만경영이라고 코레일을 비난하며 숨통을 조이고 있다. 한국과 같이 좁은 땅에서는 철도가 자동차와 경쟁하며 흑자 내기는 대단히 어렵다. 그런 철도에 경영도 모르는 낙하산 인사를 내려보내고 권좌에 앉아 호통치는 권력자들이여! 당신들은 무슨 낯으로 코레일에 돌을 던지는가?

모든 공기업이 그렇듯 철도도 정치권력의 희생물이다. 코레일은 2004년 시설과 운영의 분리로 이미 병이 들게 되어 있었다. 철도산업의 특성을 무시한 정치권력의 농단이었다. 시설과 운영의 분리로 이곳저곳에서 사사건건 부딪히고 충돌하여 끊임없는 갈등과 다툼으로 부채와 적자가 누적되었다. 쌈박질로 해외의 황금시장을 쳐다만 보고 발만 동동 구르고 있다. 그 피해가 상상을 초월한다.

케이티엑스(KTX)도 쪼개고 나면 예상하지 못한 부작용이 속출하게 되어 있다. 우선 당장의 고정비성 추가비용과 중복비용이 엄청나다. 또한 네트워크 산업인 철도노선이 서로 얽혀 네 탓 내 탓 쌈박질을 할 것이다. 한 지붕 아래에 있을 때와 지붕이 달라질 때의 마음의 거리는 너무도 멀다. 공기업이 비효율적이라고 비난하면서 왜 또 다른 공기업을 만들려 하는가? 앞뒤가 맞지 않는다. 지금까지 경영성과는 공기업끼리 비교하며 평가해 왔고, 그 시스템을 잘 활용하면 쪼개지 않고도 문제점들을 충분히 방지할 수 있다.

철도산업에 ‘경쟁이 최고’라는 단세포적인 논리를 적용해서는 안 된다. ‘경쟁효과’ 이전에 ‘규모의 경제’란 기본원리도 있다. 케이티엑스 쪼개기는 마치 ‘경쟁이 좋다’며 1만대 생산능력을 가진 자동차 공장을 1000대 크기 공장으로 쪼개는 것과 같다. 유일한 흑자노선 케이티엑스를 떼어가면 코레일이 죽는 것은 불을 보듯 뻔한데 어떻게 당신들은 사슴을 말이라고 우겨대는가? 경쟁도 아닌 것을 경쟁이라 강변하며 왜 철도산업을 죽이려 드는가? 철도는 경쟁효과가 없는 지역독점 산업이다. 철도의 종주국 미국은 “철도는 경쟁이 아닌 규제가 더 바람직하다”는 결론을 냈음을 다시 한번 강조한다.

경쟁은 마땅히 같은 조건에서 이뤄져야 한다. 한쪽은 새파란 초원에서 한쪽은 메마른 사막에서 ‘경쟁하라’ 하면 공정한 경쟁이 아니다. 흑자를 낸 수서역 노선은 보너스 잔치를 벌일 때 서울역 노선은 손가락만 빨고 있어야 하는가? 같은 직종에 보수가 낮으면 사기가 떨어져 사고위험도 높아진다. 수서는 이익을 내는데 왜 보수가 적냐고 아우성일 것이다.

케이티엑스 쪼개기는 코레일의 생사를 좌우하는 중대사이다. 정부는 이런 중대사에 노조의 의견을 경청했는가? 독일 철도는 노사정이 동수로 정책을 결정하고, 프랑스는 운영-시설의 분리·통합을 논의하면서 4개 주제별 위원회를 만들고 60회 이상의 실무회의, 130회 이상의 청문회를 열었다고 한다. 우리도 60회 이상의 실무회의와 130회 이상의 청문회를 열고 지혜를 모아 한국 철도의 백년대계를 확립해야 한다.

국가도 기업도 모두 경영의 문제이다. 경영은 곧 사람이다. 누가 경영을 맡느냐의 문제이다. 5000억원의 세금을 아끼려면 낙하산 짓을 중단해야 한다. 케이티엑스 쪼개기는 또 다른 방만경영의 공기업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케이티엑스 쪼개기를 철회하고 코레일이 자체 개혁을 할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해 주어야 한다. 코레일이 염원하는 대로 시설과 운영을 통합하여 해외시장에서 수익을 올릴 수 있도록 힘을 몰아줘야 한다. 그리고 방만경영은 강력한 규제와 함께 구성원과의 대화와 설득으로 대처해야 한다.

임석민 한신대 사회과학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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