굴뚝에서 온 편지를 읽는다.
솟대에 앉은 작은 굴뚝새의 절규가 날카로운 고드름처럼 내 온몸에 박혀 든다. 백척간두, 칼바람 속에서 나목이 된 해고노동자의 굴뚝시위, 약한 자가 강한 자에게 보내는 호모 사케르의 뜨거운 메시지다.
그대의 머리와 가슴에서 흘러내리는 핏방울 속의 쇳내는 여전히 뜨겁게 용솟음치고 있음이 눈물겹다. ‘미안하다’는 문자를 찍는다.
굴뚝 난간에서 펼치는 투우사의 격렬한 몸짓 따라 빨간 천조각이 프시케의 날개처럼 내 마음을 접었다 펼쳤다 한다. 그 까닭은 무엇일까. 한발 디딜 틈 없는 절박한 심정을 노래한 이육사의 ‘절정’은 파랗게 질린 하늘을 떠받치는 대들보 같은 형국이다.
칠흑 같은 밤, 세찬 바람을 끌어당기는 굴뚝새야. 어둠보다 차디찬 바람보다 더 고통스러운 건 외로움이겠지. 냉혹한 자본주의의 굴레 속에서 배제된 호모 사케르들, 어디 그대뿐이겠는가. 굴뚝 밑의 동료들을 생각하며 눈물 쏟는 그대를 보는 사람들도 호모 사케르에 다르지 않을 터이다.
지금 두려운 것은 굴뚝을 바라보며 두 손을 모은 아내의 기도 소리가, 그대의 숨죽인 울음소리에 행여 끊길까 하는 것이야.
‘겨울은 강철로 된 무지갠가 보다’라는 시구가 내 가슴을 친다. 셸리의 ‘오, 바람이여! 겨울이 오면 봄이 멀지 않으리’라는 시구 또한 약한 자의 희망이요, 뜨거운 혼의 기도가 되고 있네.
아직 하늘의 명 다하지 않았거늘, 아내의 기도 소리가 기적 같은 음률로 들리고 가진 자의 눈빛이 달라졌다 싶으면 주저하지 말고 내려오시게. 무지개가 되어, 봄처럼 당당하게 돌아오시게.
세상의 불의를 거역한 사나이, 죽고 싶어도 죽을 수 없는 사나이, 그대의 들끓는 가슴을 아파하지 않을 자 그 누구겠는가.
그대 보았는가, 하늘과 땅을 울린 간절한 오체투지의 행렬을. 그대가 먼저 손을 내밀었는데, 굴뚝 밑의 사람들이 어찌 손을 맞잡지 않을 수 있겠는가. 온 사회가 가슴을 활짝 열고 기다리고 있다네.
그대의 절망을 받아들일 수 없기에.
신창선 부산시 수영구 수영로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