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 가족이 모이는 즐거운 설날, 오랜만에 만난 친지들과의 흥을 돋우는 데 술이 빠질 수 없다. 우리 조상들은 명절날 집집마다 쌀에 누룩과 물을 섞은 가양주(家釀酒)를 빚어 귀한 손님들에게 내놓고 차례주로 올렸다. 조선시대에는 술이 양반 사대부 집안 ‘봉제사접빈객’(奉祭祀接賓客)에 꼭 필요한 음식이 되면서 집집마다 자랑하는 가양주가 있었고 지역마다 독특한 토속주가 있었다.
이런 전통은 일제강점기 주세정책으로 집에서 술을 빚지 못하게 되면서 사라졌다. 1960년대 우리 술 제조에 쌀을 금지하는 양곡보호정책이 실시되자 아예 일본식 청주가 전통 제주의 자리를 대신하고 말았다. 시간이 지나며 일본의 청주 브랜드인 정종(正宗, 마사무네)을 우리 전통술로 오인하는 경우마저 생겼다. 해방 이후에도 경제적 곤궁과 양곡보호정책으로 술 제조에 쌀 사용이 금지되면서 제조 허가를 받지 않은 술은 모두 불법 주류로 간주되었다. 이른바 ‘밀주 단속’이라고 해서 명절이나 농번기에 수시로 단속해 자리를 잡지 못했다.
그 와중에 근근이 명맥을 이어가던 우리 술이 재도약을 꿈꾸고 있다. 정부도 전통주 산업 범위 확대와 더불어 통신판매처 및 용기 제한 등과 같은 유통상의 규제를 조금씩 완화하고 있다. 또한, 술 빚기에 남다른 기술을 보유한 사람들을 명인이나 무형문화재로 지정해 전통주 복원에 힘쓰고 있다.
농촌진흥청에서도 전통주 산업 활성화 방안의 일환으로 우리 술 제조의 기본이 되는 ‘양조용 벼’ 연구에 앞장서고 있다. 전통주 맛은 쌀알 하나에 좌우된다고 할 만큼 좋은 쌀을 쓰는 것이 중요한데, 2010년 국립식량과학원에서 개발한 ‘설갱’벼는 매우 부드럽고 잘 으깨져 누룩균이 잘 달라붙고 번식도 왕성해 맛과 향기가 좋은 우리 술 재료가 되고 있다.
‘설갱’벼로 만든 술에 전통주 시장의 호평이 쏟아졌다. 한 전통주 업체는 2010년 약주류 부문에서 311억원, 막걸리류에서 567억원의 매출을 거둬올렸다. 쏟아지는 주문량을 맞추기 위해서는 ‘설갱’벼의 대규모 계약재배가 필요했다. 이렇게 생산된 물량은 고가에 매입돼 농가의 수익 증대로 이어졌다.
이처럼 전통주는 우리 농산물의 부가가치를 높여 줄 뿐 아니라, 쌀을 비롯한 원료 농산물의 소비 증대와 수입주류의 대체 등 그 의미가 매우 큰 산업이다. 또한, 지역을 기반으로 음식관광 등과 연계하는 전통주의 6차 산업화는 농업의 활로를 위한 새로운 대안이 될 수 있다.
전통주 산업을 활성화시키기 위해서는 좀더 지속적이고 적극적인 대책이 필요하다. 우리 전통 문화와 고품질의 양조 쌀 품종, 그리고 우수한 양조기술이 어우러진 전통주 문화의 발굴, 복원, 기반 마련을 위한 연구를 강화해야 한다. 독창성과 사업성이 우수한 소규모 양조장은 규제 완화와 컨설팅 지원 등을 통해 시장 경쟁력을 향상시키도록 해야 한다. 홍보도 필요하다. 전통주가 관광과 역사가 함께하는 격조 높은 문화상품으로 자리잡을 수 있도록 전통주 제조 체험과 교육을 실시하고, 전통주마다 지역 문화와 엮어서 스토리텔링을 상품화해야 한다. 다가오는 우리 고유의 명절 설에 정성이 가득 깃든 전통주로 예를 갖추면 어떨까?
임상종 농촌진흥청 국립식량과학원장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