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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냐면] ‘수포자’의 나라는 어디인가? / 김민형

등록 2015-04-01 19:29수정 2015-04-01 19:29

김영훈 기자 kimyh@hani.co.kr
김영훈 기자 kimyh@hani.co.kr
지난해 8월 서울에서 열린 국제수학자대회(ICM)에서 수학대중화 상을 받은 아르헨티나의 과학저널리스트 아드리안 파엔사의 기자회견에서 나는 통역을 맡았었다. 시간이 다 되어갈 때쯤 나온 질문 하나가 대략 다음과 같았다. ‘이번 대회에서 대중강연을 들으러 온 중학생에게 왜 왔는가를 물었습니다. 그 아이의 답은 학교 선생님이 시험에 나온다고 하셨기 때문이라는 것이었습니다. 이런 한국의 교육 실정에 대해서 파엔사 선생님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파엔사는 힘껏 고개를 끄덕이면서 이렇게 답했다. ‘저는 그동안 남미, 북미, 유럽, 모든 곳에서 수학에 대한 이런 종류의 반응을 끝없이 보고 경험하면서 활동해왔습니다. 어떻게 한국이라고 예외이겠습니까?’ 한국의 교육을 굉장히 특이한 문제로 다루는 관습을 적절하게 초월하는 현실적인 대꾸였다.

3월21일치 <한겨레>에 한국을 ‘이상한 수포자들의 나라’라고 개탄하는 전면기사가 실렸다. 수학교육에서의 지적 즐거움과 동기부여의 중요성에 대한 이야기 중에 한국 교과서 비판론, 그리고 핀란드 교육체제의 배울 만하다고 생각되는 점들을 비교적 상세하게 설명했다. 학업성취도 국제비교평가(PISA)에서 한국이 항상 1~3위권이면서 2012년 설문조사에 나타난 수학에 대한 학생들의 ‘흥미도’ 비교에서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2개국 중 28위였다는 사실이 기사의 중요한 관건이었다. 그런데 그 기사는 같은 비교 평가에서 핀란드 학생들의 흥미도는 오이시디 29위였다는 사실을 간과한 듯하다.

워싱턴에 있는 브루킹스 사회과학연구소에서 발행한 ‘2015년 미국교육보고서’는 이 현상을 더 깊이있게 분석했다. 이 보고서 30쪽에도 피사 평가를 인용한 흥미도 순위 39개국이 수록된 도표가 있는데 도표 밑바닥의 6개국이 한국, 핀란드, 일본, 벨기에, 네덜란드, 오스트리아, 그리고 최상위 6개국은 인도네시아, 타이, 멕시코, 튀니지, 터키, 브라질이었다.

흥미도에서 세계 1위인 인도네시아의 학업성취도는 전체평균 494점보다 훨씬 낮은 375점으로 세계 64위였고 흥미도 순위의 상위권은 대체로 성취도 하위국가로 이루어져 있었다는 사실도 지적됐다. 예외가 몇은 있어서 홍콩(성취도 3위, 흥미도 8위), 덴마크(성취도 22위, 흥미도 7위), 리히텐슈타인(성취도 8위, 흥미도 18위) 3개 지역은 양쪽 다 상위권에 속했다.

보고서를 인용하자면 ‘국제 비교의 증빙 자료는 미국 학생들(성취도 36위, 흥미도 19위)의 흥미도에 대한 전반적인 우려나 흥미도의 증진이 전국적으로 성취도를 높일 것이라는 가설을 정당화하지 못한다’고 결론지었다.

그럼에도 나는 선생의 직관으로 흥미도를 굉장히 중요시한다. 공부하다 보면 별 재미없는 연습을 통해서 실력을 쌓아야 하는 상황도 분명히 있는 반면 애당초 동기가 확실할수록 연습하기 쉬워지는 것도 사실이다. 수학연구를 할 때도 학술논문 몇쪽에 걸친 복잡한 논리가 전개될 때면 집중하기 어렵고 줄거리가 어디로 가는지에 대한 지표가 없는 경우에는 저자에게 직접 물어보아야 하는 일이 많다. 각 나라에서의 흥미도와 성취도의 상관관계를 보면 학업성취도가 높은 나라일수록 상관관계 역시 높은 경향이 있다고 2014년에 오이시디가 발행한 ‘피사 조명’ 보고서에서 주장하기도 했다. 즉, 같은 나라 학생끼리만 비교하면 흥미도가 높은 학생일수록 수학을 잘한다는 뜻이다. 이처럼 서로 모순될 듯한 여러 정보와 경험 속에서 개인이나 사회나 방향을 정해 나가는 작업은 항상 불확실성과의 씨름 속에서 이루어진다.

나는 외국 생활을 오래 하면서 국내를 오가는 입장에서 여러 여건과 문화가 다른 사회들의 단순한 비교평가를 답답하게 느끼는 일이 많다. 유럽 사람은 미국에서는 일을 잘할 것으로 믿고 미국에서는 북유럽을 동경하며 영국 신문에서는 아시아의 학업 성취도를 자국 상황과 비교하며 우려하는 기사를 볼 수 있다. 한국에서는 아직도 ‘선진국에서는 이렇게 한다’는 막연한 이야기가 복잡한 사회문제에 대한 판단의 척도로 이용되는 일이 불행히도 흔하다. 청소년 교육만큼 심각하고 복잡한 이슈에 관한 한 웬만해서는 ‘이렇다’, ‘이래야 된다’의 결론이 너무나 어려운 현실 속에서도 좋은 뜻을 가진 많은 사람들이 꽤 쉽게 이런 실수를 범하는 것 같다.

뉴욕과 서울을 오가며 생활하는 직장인의 이야기를 들은 일이 있다. 뉴욕에서 만난 친구가 “하우 아 유 두잉?”(How are you doing, 어떻게 지내십니까) 하고 물으면 “그레이트!”(Great, 아주 좋습니다) 하고 답하지만 거의 같은 시기에 서울에서 “요새 어떻습니까?” 하고 묻는 사람에게는 “그저 그렇지요”가 습관적인 반응이라고 한다. 다양한 세상의 실태 파악이 어려움을 나타내는 작은 일화다.

김민형 영국 옥스퍼드대 수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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