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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냐면] 세월호, ‘싸울아비’를 기억하며 / 송경동

등록 2015-04-16 18:33수정 2015-05-07 22:02

한 사내가 있었다. 늘 윤나는 구두에 말끔한 양복을 입고, 롱코트까지 걸치고 다니는 이였다. 머리에는 스프레이까지 뿌리고 다녀 주윤발을 좋아하는 사람 아닐까 살짝 생각하기도 했다.

세월이 훌쩍 지나, 그는 며칠 전 4월9일 오전 중앙고등법원 505호실에 앉아 있었다. 가슴엔 서울구치소 수번 ‘62번’ 딱지가 붙어 있었다. ‘62번’이 되어 산 지 벌써 10개월. 선고는 무표정했다. “피고는 반성하지 않고 동종 범행을 계속, 불법 시위하겠다고 본인이 밝혀 실형 선고가 불가피하다.” 실형 2년 확정이었다. 지난 공판 최후진술에서 그는 말했다. “민주주의를 도둑질한 도둑에게 도둑이야 했더니 잡아왔다.” “같은 경우에 처하게 될 경우, 같은 행동을 하겠다.” 박근혜 정부 들어 국가보안법 피해자들을 빼고는 가장 많은 형기의 공안사범, 일명 ‘양심수’가 되는 순간이었다. 도대체 누가 평범한 한 사내를 대한민국 사회 대표 공안수로 만들었을까. 그는 2007년 대선 때 이명박씨를 뽑았던 사람이었다.

‘민주주의를 훔친 도둑’이 실제 ‘도둑’이었다는 것은 대한민국 법정이 이미 확인해 주었다. 지난 대선 때 댓글 공작 등을 통해 국민 모두의 민주주의를 도둑질한 국정원 사건이었다. 그 도적질로 빼앗은 장물을 취득해 한세상 거머쥔 이는 아직 건재하지만, 그 책임자였던 원세훈 전 국정원장은 현재 구속 상태기도 하다. 그는 지난해 2월15일 서울역 고가 위에 있기도 했다. 국정원 대선 공작을 규탄하며 분신해 간 고 이남종님의 49재 날이었다. 하마터면 그에게도 큰일이 났을 수 있었다. 경찰의 무력행사 과정에서 ‘용산에서처럼’ 불길이 치솟아 올랐다. 다행히 생명엔 지장이 없었다. 뒤늦게야 ‘도둑질’을 확인한 대한민국 사법부가 가장 미안해하고 고마워해야 하는 사람이다. 그러나 그에게 돌아온 이 정부와 법원의 답은 ‘특수공무집행방해죄’. 최소한의 예의와 공평성도 없는 무례한 일. 최소 민주주의를 빼앗긴 우리 전체에게 침을 뱉는 모욕적인 일이다.

사내의 이름은 김창건. 그는 2008년 광우병 촛불항쟁 때 처음으로 거리에 나왔다. 인터넷상 별칭인 ‘싸울아비’가 지난 7년 동안 그의 이름이었다. 그가 연행되고 재판을 받는 과정에서야 ‘김창건’이라는 이름을 나도 겨우 기억할 수 있었다.

그가 연행되던 작년 6월10일, 청와대 앞 총리 공관 앞에 함께 있었다. 관민이 따로 6·10항쟁 27주년 기념식을 열던 날이었다. 기자회견을 하겠다고 그가 가슴속에 있던 플래카드를 펼친 지 1분도 안 되는 눈 깜짝할 사이였다. 명백한 표적 연행. 그는 여전히 운동 사회 내에서는 이름 없는 시민에 불과했지만 경찰들에게는 그 누구보다 요시찰이 필요한 불온 인사가 되어 있었다. 세월호 추모 건으로만 두 번째 연행이었지만 그는 결코 ‘가만히 있지 않았고’, 진실을 향해 주저하지 않았다.

청와대 주변에 6000여명의 경찰들이 깔려 있던 날이었다. 천둥, 번개, 비가 쉬지 않고 내리던 정말 음산한 밤이었다. ‘가만히 있어라’ 청년학생들과 ‘6·10 세월호 청와대만인대회’ 참가 시민 70여명이 몇 시간에 걸쳐 비명을 지르며 연행되던 날이었다. 사람들은 딱 세 마디만 반복해 외쳤다. ‘이윤보다 생명이다’, ‘아이들을 살려내라’, ‘청와대가 책임져라’. 집으로 가겠다면 고착을 풀어주겠다고 했지만 단 한 명도 돌아서지 않던 날이었다. 사람들이 연행되고 있다고 에스엔에스(SNS)상으로 몇 시간을 호소했지만 그 어디서도 구조대가 오지 않던 날이었다.

검찰은 이렇게 ‘가만히 있지 않는 사람들’의 배후를 캐겠다고 그와 함께 연행되었던 정진우씨 등의 카톡을 압수수색하며 사이버 탄압에 나서기도 했었다.

그런 괘씸죄인가 보다. 2년이라고 한다. 서울구치소 수번 62번이라고 한다. 세월호 참사는 벌써 1주기라고 한다. 나는 지난해처럼 오늘도 날을 꼬박 새운 채 노란 리본 하나를 챙겨들고 광화문으로 나갈 채비를 하고 있다. 무슨 위로를 그에게 건네야 할까. 나도 곧 선고니 따라가겠다고 할까? ‘이윤보다 생명이다’, ‘아이들을 살려내라’, ‘청와대가 책임져라’ 잊을 수 없는 그 밤의 비명과 절규들을 다시 한 번 새겨본다. 살아 있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는 것. 그것만이 우리 모두의 기쁨과 영예가 될 수 있도록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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