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레이션 김선웅
필자는 이른바 부림사건이라는 공안기관이 붙여준 이름으로 국가보안법 위반의 죄명을 덮어쓴 채 33년을 지냈던 사람이다. 지난해 대법원에서 본인을 포함하여 관련자 중 5명이 무죄판결을 받을 때까지, 나 자신은 물론 가족과 친지들까지 ‘빨갱이의 가족’이라는 손가락질을 받으며 이루 말할 수 없는 피해와 상처를 입으며 지내왔다. 그렇기 때문에 필자는 강기훈씨의 그간의 고통을 어느 정도는 이해할 수 있다고 믿는다.
하지만 강씨가 겪은 고통은 우리보다 훨씬 크고 깊은 것이었음을 나는 안다. 우리는 그나마 87년 6월항쟁 이후 민주화가 진전되면서 한정된 범위의 사람들에게서나마 ‘정치적으로 부당한 탄압을 받은 사람들’로 인정되어 왔고, ‘민주화운동 관련자’라는 어정쩡한 명칭을 국가로부터 받기도 했으며, 특별재임용의 형태로나마 재취업의 길이 열리기도 했다. 그러나 강기훈씨는 일반인으로서는 상상하기도 힘든 반인륜적, 패륜적 범죄를 저지른 사람으로 간주되어 이루 형언할 수 없는 고통을 겪어야 했다. 지금 그의 몸을 갉아먹고 있는 병도 그의 견딜 수 없는 정신적 고통과 무관하지 않다고 나는 믿는다.
한 인간을 자신들의 필요 때문에 이렇게 철저히 짓밟아 놓은 자들은 당연히 그 피해자에게 사죄해야 한다. 지금도 너무 늦긴 했지만 대법원까지 그 무죄를 인정한 지금, 그들은 하루빨리 강기훈씨에게 사죄하여야 마땅하다. 그 사죄가 강씨의 그간의 고통을 억만 분의 일도 해소해 주지 못한다 할지라도, 그가 흘려야 했던 그 많은 눈물 중 단 한 방울의 값어치에도 미치지 못한다 할지라도, 그리고 그의 깊어져 버린 병을 조금도 낫게 할 수 없다 할지라도 그들은 당장 사죄하여야 한다. 피해자가 원하고 있기 때문만이 아니라 이 나라의 정의를 바로 세우기 위해서도, 또 유사한 사건의 재발을 막기 위해서도.
부림사건 관련자들도 재심을 진행하는 동안 파렴치하고 뻔뻔한 검찰에 여러 차례 반성과 사과를 촉구한 바 있다. 하지만 재심 기간 동안에도 온갖 억지소리로 자신들을 변명하던 당시 검사들은 대법원의 확정판결이 있은 지 8개월이 지난 지금까지 일언반구 반성 표현이 없다. 이래서는 우리 사회의 사법정의는 결코 바로 설 수 없다. 우리 사회가 올바른 민주사회가 될 수 없다! 아무리 늦었더라도 책임 있는 자들은 반드시 그 책임을 져야 하고, 잘못한 일에 대해서는 사과하여야 한다! 더 늦기 전에 바로 지금!
검찰과 법원은 강기훈씨에게 즉각 사죄하라!
고호석 부림사건 피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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