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5년, 강남구는 서울의 열두번째 행정구로 성동구에서 분구되었다. 1973년 말 5만명이었던 강남지역 인구가 불과 2년 만에 32만명으로 늘어서다. 12년 후 강남구민은 80만명을 넘어섰고, 1988년 강남구에서 서초구가 분리되었다.
강남구의 변화는 서울시의 ‘1970년 남서울계획’과 정부의 각종 세제혜택, 그리고 ‘영동지역개발촉진지구’ 지정으로 시작되었다. 정부는 강북 도심의 과밀화를 막고, 심각한 주택난을 해결하기 위해 수십년간 ‘강남지역은 성장, 강북지역은 억제’ 정책을 폈다. 1970년 서울시는 2년간 167억원을 강남지역 도시기반시설 확충에 투여했고, 정부는 공무원아파트와 시영아파트 건설 사업을 대대적으로 추진했다. 서울대와 서울교대를 포함한 다수의 명문고에 직간접적인 압박을 넣어 강남으로 이전시켰다.
‘강남 성장정책’은 40년간 지속되었고, 그만큼 강남·강북의 격차는 커졌다. 2014년 강남구 재정자립도는 64.3%로 서울시 자치구 중 1위이고, 서초구는 2위로 자치구 평균(33.6%)의 2배나 된다. 재산세 부과액도 1위인 강남구(6066억원)와 최하위인 강북구(459억원) 간 차이는 13배가 넘는다. 법인사업체 수 역시 강남구(2만3402곳)가 제일 많으며, 성동구(5093곳)의 4배에 이른다.
오늘의 ‘강남 발전’은 자연스러운 도시성장 과정을 통해 이뤄진 것이 아니다. 정부의 직접적인 재원 투자를 시작으로 각종 세금 면제, 대규모 공동주택 건설과 교육인프라 구축이 이어졌고, 구도심인 강북지역엔 개발억제정책을 편 결과다.
‘2015년’ 강남은 또 한번의 기회를 잡았다. 한국전력 부지 개발에 팔을 걷어붙인 ‘현대차그룹 유치’와 부지 개발에 따른 ‘공공기여금’이다. 현대차그룹 본사와 국제회의장 등 각종 부대시설이 들어서면 연간 100억원 이상의 강남구 세입이 증가하고, 건설 과정과 완공 이후 발생하는 지역경제 경기부양 효과는 측정하기조차 어렵다. 현대차그룹이 부담할 공공기여금 2조원 또한 천문학적 재원이다. 서울시교육청 1년 예산과 맞먹고 도서관 수백개, 학교 수십개를 지을 수 있는 돈이다.
그런데 서울시와 강남구는 ‘공공기여금 활용지역 공방’에만 열을 올리고 있다. 공공기여금을 강남구만 사용해야 한다는 주장도, 송파구까지 범위를 넓혀야 한다는 서울시의 논리도 부족하긴 마찬가지다. 현대차그룹 유치 이익과 개발에 따른 공공기여금 활용 권한을 강남지역이 모두 가져가버리면 강남·강북의 격차는 더 커질 것이다. 이 기회를 놓치면, 40년 전 ‘강남집중개발’처럼 전폭적인 재정지원과 특혜법 제정을 담은 대수술이 아니면 강북지역 발전은 불가하고, 강남·강북 균형발전은 더더욱 멀어진다.
강남구는 자기 지역만 생각하는 이기심을 버리고, 서울시는 편협한 행정에서 벗어나야 한다. 지금의 강남 발전이 강북주민을 비롯한 서울시민 모두가 함께 이뤄낸 결과란 사실을 기억하고 강남·강북 주민의 ‘삶의 질’ 격차를 해소할 방안을 찾아야 한다. 조금 늦은 감이 있지만, 서울시는 최근 국토계획법 시행령 개정을 제안할 예정이라 한다. 현행 시행령은 공공기여금 활용 범위가 해당 시·군·구로 한정돼 강남·강북 균형발전을 고려한 계획을 세우기 어렵다. 활용 범위를 ‘서울시 전역’으로 확대하면 대규모 개발 사업으로 생기는 이익을 서울시 자치구간 ‘빈익빈 부익부’ 해소에 쓸 수 있다.
서울시는 하루빨리 국토교통부와 시행령 개정에 대한 논의를 시작하고, 국회의 관련법 개정 동향과 발맞추어 ‘강남·강북 균형발전’의 제도적 틀을 마련해야 한다. 현대차그룹 유치를 통한 지역 경기부양 효과는 강남구와 송파구가 누리고, 2조원의 공공기여금은 40년간 경쟁과 갈등으로 균형이 파괴된 도시를 되살리는 데 사용한다면 서울시는 도시 ‘공존’을 넘어 ‘공영’을 꿈꿀 더 큰 기회를 잡을 수 있다.
정원오 성동구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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