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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냐면] 생협 차별 ‘비조합원 이용금지’ 법 조항 없애야 / 김형미

등록 2015-06-29 18:47

1999년 2월에 제정된 소비자생활협동조합법은 환경농업육성법의 후속 조처에 가까운 것으로 생협을 친환경농산물의 판매처 정도로 보았다. 농축수산물과 환경제품 정도만 취급하도록 사업범위를 제한했다. 생협의 연합회를 결성할 수 있는 근거조항도 없었다.

이런 중에도 생협은 식품안전, 환경과 조화를 이루는 농업을 바라는 소비자들의 적극적인 실천으로 성장하여 2010년 3월에는 생협법이 대폭 개정되었다. 사업범위의 제한이 풀려 협동조합의 가장 기본적인 분야인 공제사업을 허용했으며 연합회 설립의 근거를 마련하였다. 그런데 법 개정 뒤 5년이 다 되도록 소관부처인 공정거래위원회가 공제사업 시행에 필요한 고시 등의 조처를 취하지 않고 있다. 100만명 규모로 추산되는 생협 조합원들이 생협공제를 이용하게 되면 불특정다수가 가입하는 보험처럼 과대광고, 주주 배당을 할 필요가 없어 환급률도 높아지며 보험계약자가 곧 소유자인 만큼 도덕적 해이도 획기적으로 줄어들 수 있다. 이런 소비자 후생, 생협 조합원이 누려야 할 권리가 소관부처의 부실로 억눌리고 있는 현실이다.

생협의 발전을 가로막는 또 하나의 규제조항은 비조합원 이용금지 조항이다. 농협법, 협동조합기본법 등에서 이 조항은 조합원의 이용에 지장이 없는 범위에서 정관이 정하는 바에 따라 조합원이 아닌 자에게 그 사업을 이용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오직, 생협법에만 “조합은 조합원이 아닌 자에게 조합의 사업을 이용하게 하여서는 아니 된다”(제46조)고 되어 있는데 왜 생협만 법적으로 이러한 차별을 받아야 하나.

협동조합은 조합원 스스로 하는 ‘자기 결정’이 생명이다. 어떠한 사업을 하고 어떻게 운영할지 조합원이 결정하고 출자하며 스스로 책임진다. 이러한 자치 역량을 키우고 잘 실현하는 협동조합이 성공하며 사회에도 기여한다. 협동조합에서 조합원 가입과 이용에 관한 규정, 사업의 대상, 방식은 공정성과 경제윤리를 해치지 않는 한, 협동조합의 정관으로 스스로 정하는 것이 맞다. 상당수 나라에서 조합의 이용 문제는 정관에서 정하는 ‘정관 자치’의 원칙을 확고하게 채택하고 있다.

한국의 생협은 농업과 환경을 지키는 친환경 유기농산물 직거래 사업을 중심으로 발전해왔다. 이 사업의 관건은 계약재배 방식의 생산과 책임 소비의 균형을 이루는 것이다. 조합원 가입과 이용이 많아지면 계약생산량이 모자라게 되고 그 반대면 생산량이 남아돌게 된다. 요즘같이 경기침체가 계속되는 상황에서 이 수요 공급의 조절은 매우 어렵다. 특히 소비가 부족할 때 계약생산량이 남아도는 상황은 비영리로 운영되는 생협과 농민들에게 큰 부담이 된다. 따라서 공급이 부족할 때는 비조합원 이용을 일정하게 제한하고 공급이 원활하거나 초과할 때에는 비조합원 이용을 탄력적으로 허용할 수 있어야 한다. 한마디로 홍수 때는 물을 가두고 가뭄에는 물을 내보내는 저수지와 같은 원리가 생협의 직거래 사업에서도 작동된다는 말이다.

그런데 현행 생협법은 이러한 역동적인 판단과 대처를 못하도록 아예 가로막고 있다. 설령 이게 초기에 필요한 규제였다고 하더라도 30년이란 시간이 지나 생협이 건실하게 성장하는 시기라면 달라져야 한다. 침대 크기를 정해놓고 거기에 안 맞으면 손발을 잡아 늘리거나 자르는 프로크루스테스의 침대 같은 법률이어서는 아니 되지 않는가.

생협법은 협동조합의 원리인 상호성과 조합원 자치에 부합하도록, 또한 발전을 촉진하기 위한 내용이 되도록 바꾸어야 한다. 비조합원 이용금지 조항은 최소한 협동조합기본법과 농협법 수준으로 개정해야 한다. 협동조합 주간에 즈음하여 조속한 생협법 개정을 바란다.

김형미 아이쿱협동조합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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