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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냐면] 막걸리 독립을 생각하다 / 윤진원

등록 2015-07-13 18:56

막걸리 양조에는 대부분 누룩곰팡이균의 일종인 백국균이 발효제로 사용된다. 2013년 농촌진흥청은 이 양조용 곰팡이균의 공식학명을 ‘아스페르길루스 루추엔시스’(Aspergillus luchuensis)로 바로잡았다. 그때까지 ‘아스페르길루스 가와치’(Aspergillus kawachii)라는 이름으로 불렸다. 1949년 발견자인 일본인 ‘가와치’의 이름을 따랐다.

기껏해야 곰팡이균 하나가 제 학명을 찾는 데 무려 64년이나 걸린 셈이다. 양조용 입국(백국균을 양조용 쌀에 배양한 발효제)과 그 배양 기술은 일본에서 도입됐다.

동아시아 패권전쟁에 혈안이 된 일제는 막대한 전쟁자금이 필요했다. 이에 따라 1905년 을사늑약으로 조선을 집어삼킨 일본은 점진적으로 수탈의 강도를 높여갔다. 회사령, 어업령, 산림령, 광업령 등의 여러 제령을 포고하는데 그중 가장 앞선 것이 바로 1907년의 주세령이다. 이후 수차례의 개정을 걸치며 주세법이 만들어졌다. 토지조사사업에서 산미증식을 통해 조세제도로 이어지는 식민 수탈 시스템을 고도화한 대표적인 사례다.

조선총독부 통계연감을 보면 전체 조세에서 주세가 차지하는 비율이 1910년에는 1.8%로 미미했다. 그런데 1929년 세계 대공황의 여파로 잔인무도한 수탈이 가속화됐던 1930년도를 지나면서 그 비율이 20%를 넘어선다. 한 손에는 주세법이란 무기와 또 한 손에는 근대화라는 명분으로 제국주의 입맛에 맞게 식민 주류산업 구조를 완성한 것이다. 이로써 우리 민족의 다채로웠던 전통술 문화는 완전히 싹이 잘리고 암흑의 역사가 시작됐다. 해방이 되었으나 일제가 만든 주세법을 뼈대로 미군정 체제를 거치면서 고착화된 것이 현재 우리의 왜곡된 주류산업의 기원이다. 전국 각지의 희석식 소주회사와 몇 안 되는 맥주회사가 출고가 기준 약 8조원대에 이르는 주류시장의 90% 가까이를 장악하고 있다. 그나마 4조원대에 육박하는 맥주 시장은 외국 회사가 주도하고 있는 실정이다. 막걸리는 고작 5%대. 유럽 등 세계 여러 나라와 특히, 전범 가해국인 일본 또한 주류산업을 문화와 역사가 공존하는 민족문화산업으로 육성했다.

아주 조금만 관심 있게 보자. 수입쌀에 일본산 종균을 사용하는 막걸리가 천편일률이다. 이 어찌 오늘의 막걸리가 민족의 술이라 할 수 있겠는가? 와인 문화에서 보듯 술은 음식 문화의 총아로 일컬어지고 있는 것을 보면 부끄럽기 짝이 없는 노릇이다.

최근 보도를 보면 농림축산식품부와 환경부가 전통주 업계와 손잡고 전통 누룩으로 막걸리와 전통주에 새로운 생명을 불어넣는 작업을 하겠다고 나섰다. 기뻐할 일이다. 한국 막걸리의 자존심을 다시 세우는 막걸리 발전의 토대가 마련됐기 때문이다. 막걸리 독립! 이는 민족문화를 다시 꽃피우는 일이기에 세계와 경쟁할 수 있는 문화 융성의 창조경제와 다르지 않다.

윤진원 국민막걸리협동조합 사무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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