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에게 밤은 일반적으로 지친 일상을 달래는 안식의 시간이자, 내일을 준비하는 재충전의 시간이다. 하지만 일부 지역은 밤낮없이 계속되는 집회시위와 그로 인한 소음으로 주민들이 고통을 겪고 있다.
이는 집시법 ‘야간 옥외집회 금지’ 규정(제10조)에 대해 헌법재판소가 ‘심야의 집회·시위는 시민의 평온을 해칠 수 있고 폭력행위 발생에 대한 대처와 치안 유지의 어려움 때문에 규제의 필요성은 인정되나, 기존의 포괄적이고 가변적인 제한시간대를 국회에서 구체적인 시각을 정하여 개정하라’는 취지로 헌법불합치 결정을 한 이후 5년이 넘도록 국회의 집시법 개정이 지연되면서 심야시간에 아무런 제한 없이 집회시위가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물론 자유민주주의 국가에서 집회의 자유는 당연히 보장되어야 한다. 다만 국민의 모든 자유와 권리에 한계가 있듯이 집회의 자유도 사회의 질서유지나 타인의 소중한 권리를 과도하게 침해하는 선까지 무한정 허용될 수 없다. 만약 저마다 아무런 제한 없이 늦은 시간까지 전국 곳곳에서 집회시위를 개최하면서 남에게 피해가 갈 정도로 큰 목소리를 낸다면, 국민들은 더 이상 평온한 밤을 기대할 수 없다.
더구나 통상 강력사건 등 치안 수요가 많은 심야시간에 집회시위 관리에 소중한 경찰력이 낭비될 경우 자칫 민생치안활동이 약해질 수 있고, 그로 인해 국민의 안전이 위협받을 수 있다.
헌재 결정 이후 여론조사 전문기관이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국민 84.1%가 ‘특정시간대 야간집회 금지할 필요’에 대해 공감하고 있었으며, 그중 59.4%가 ‘오후 10시부터 다음날 오전 6시까지 제한하는 것이 적절하다’는 의견을 낸 것은 깊이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또한 공직선거법에서도 ‘오후 11시부터 다음날 6시까지는 연설 등을 할 수 없다’고 규정한 입법례도 참고할 만하다.
미국(일부 도시)·프랑스·러시아·중국 등은 심야시간 집회를 금지하고 있으며, 영국·독일·일본 등은 시간적 제약을 규정하는 대신 경찰에게 광범위한 재량을 인정하여 야간집회에 대한 제한이 가능하도록 한 점은 우리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사회적 공감대와 외국의 사례에 비춰 집회시위의 자유를 최대한 보장하면서도 공공의 질서와 사회 안전, 일반 시민들의 주거 및 사생활의 평온을 보호하기 위해 심야시간대의 집회시위에 대해서는 합리적으로 제한하는 방향으로 집시법 개정이 필요하다.
오는 9월 정기국회는 19대 마지막 정기국회로 이번에 집시법 개정이 이루어지지 않을 경우 시민 불편이 장기화될 가능성이 있다. 그간 입법 발의된 대체입법이 폐기되면 20대 국회에서 다시 발의하고 심사하는 데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이다. 이번 정기국회에서 시민의 불편을 최소화하는 방향으로 법이 개정되어 집회시위의 자유와 주거의 평온이 조화를 이루기를 기대해 본다.
강신명 경찰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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