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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냐면] 사색과 확신에 관한 소견 / 정우람

등록 2015-09-16 18:50

철학이 우리에게 제시하는 가장 이상적인 인생의 모습은 “사색하는 삶”(vita contemplativa)입니다. “관조적 인생”으로 해석되기도 하는 그것은 한가로운 시간의 여백을 바탕으로 자신만의 당당한 행복을 완성해가는 주인의 삶을 말합니다. 사색의 삶이 중요한 이유는 그것이 언젠가는 우리 모두가 추구해야 할 사회의 이상적 모습과도 맞닿아 있다는 조심스런 확신 때문입니다.

사색하는 삶을 살펴보기에 앞서 우리에게 익숙한 현실의 삶을 돌아볼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는 태어나서 부모의 보살핌을 받고 자랍니다. 교육제도에 편입되어 노력의 가치를 변별받고, 세상을 살아가는 데 필요한 지식과 기술을 습득합니다. 취업과 내 집 마련에 정진하고, 배우자를 맞이하여 가정과 육아생활을 영위해나갑니다. 나이가 들어 은퇴하면, 여생을 보내며 동일한 삶의 모형을 다음 세대로 상속할 것입니다.

잠시 상상의 나래를 펼칠 기회를 허락하시기 바랍니다. 부모의 손길이나 교육제도가 존재하지 않는 상황을 가정해봅니다. 당연히 시험도, 경쟁도 없습니다. 노동이나 자본의 제약도 받지 않습니다. 모든 형식의 필요, 속박, 근심 걱정이 사라집니다. 이것은 우리가 극도로 한가하고 따분한 세상과 마주칠 것임을 충분히 상정하게 하는 상황입니다.

평온함에서 비롯된 철저한 한가로움은 사색하는 삶을 구현하는 데 필요한 절대요소입니다. 그리스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가 주창한 “스콜레”(한가로움)입니다. 한가로움은 시간을 머금고 조금씩 그 내면의 고독과 외로움의 색채를 드러내기 시작합니다. 그 심연에 압도당한 우리는 당황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질서정연한 삶의 안주로부터 무위의 나락으로 내쳐진 이들이 좌절할 것임은 필연에 가깝습니다. 내일이 없는 쾌락의 추구에 탐닉할지도, 목적 없는 방황의 발걸음을 계속할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결국 고독과 지루함의 끝에서 더 이상 앞으로 나아갈 수 없을 때, 우리는 그 막막한 상황에 대한 해답을 내놓아야 합니다. 그것은 인간이 꿈꾸는 가장 근본적이고도 위대한 행위를 함축합니다.

우리는 행복을 찾기 시작할 것입니다.

행복의 의미를 고찰하고, 상상하고 정의해서, 스스로 납득할 수 있는 방식으로 실현해나가기 시작할 것입니다. 하염없이 흘러가는 시간의 공허를 채우기 위한 고민과 몰두는 능동적인 행복 찾기, 사색입니다. 사색을 통해 비로소 자신이 갈망하는 진정한 의미의 행복을 확립하고 세상을 향해 자신 있게 말할 수 있게 됩니다. 한병철 베를린예술대 교수는 저서 <시간의 향기>에서 “아름다움 곁에 잠겨 머무르는 것, 완전히 자기 안에 고요히 있는 사물을 바라봄으로써 신의 곁으로 다가가는 것”을 사색을 통해 인간이 이룰 수 있는 가장 이상적 형태의 행복으로 정의했습니다. 그것은 사회통념이 주입하고 우리가 맹목적으로 인용하던 부의 축적이나 권력의 향유가 아닌, 자신만의 고뇌를 통해 일궈낸 행복의 당당한 확신을 증명합니다.

사색의 가치를 온전히 이해하고 연대하기 위해서는 한가로운 삶이 사회적 기반으로 마련돼야 합니다. 노동, 자본, 제도로부터 해방된 궁극의 자유가 필요합니다. 그래서 행복을 제약 없이 창의하고 확신할 수 있는 자유가 시민 모두의 권리로 보장돼야 합니다. 물론 그러한 세상은 현실에선 망상일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우리가 그 망상에 깃든 인간의 이상마저 잊어버릴 필요는 없습니다. 행복할 것인가 행복하지 못할 것인가는 결국 우리들 자신에게 달려 있습니다. 사색하는 삶을 최고의 행복으로 여긴 아리스토텔레스가 우리 사회에 던지는 화두입니다. 현실의 제약을 벗어던지고 세상의 주인으로 거듭나기 위한 자신감은 사색, 그 적요 안에 잠겨 있다고 철학은 우리를 설득합니다. 모든 이가 진정으로 행복할 수 있는 꿈의 세상은 허황된 망상이 아닌 바로 우리들의 확신에 달려 있습니다.

정우람 미국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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