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은 지난 5일 통일준비위원회 회의에서 “뚜렷한 역사관 없이는 통일이 어렵고, 통일이 돼도 사상적인 지배를 받을 것”이라면서 역사교과서 국정화의 필요성을 강조하였다. 그러나 과연 그럴까?
나는 개성공단 법무팀에서 일하면서 2004년부터 10여년 동안 개성공단에서 이루어지는 남북 경제협력 사업을 가까이 지켜보았다. 나의 경험으로 볼 때, 국정화의 획일화된 역사관으로는 통일을 이룰 수 없다. 그리고 통일이 돼도 사상적 혼란을 피할 수 없다. 다양성과 개방성을 전제로 한 민주주의와 법치주의에 입각할 때만 북한을 극복할 수 있다. 획일적인 역사관을 강요하는 것은 우리의 민주주의와 법치주의에 부합하지 않을뿐더러 통일을 가져올 수도 없다.
북한이 최소한의 경제적 생활을 영위하지도 못하는데 핵개발을 하고 무력시위를 하는 모습을 보며 ‘막가파’라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그러나 지난 10년간의 경험에서 체득한 것은 이러한 북한의 행동에는 북한 나름의 논리가 있다는 점이다. 북한의 논리는 국가의 자주를 위해서라면 아무리 큰 나라와도 군사적 대결을 불사하며, 이를 위해 일정한 희생은 불가피하다는 것이다. 2006년 북한 핵실험 때 일이다. 북한 사람들에게 우려를 나타내면 그들은 “우리의 핵으로 인해 미국 침략을 막을 수 있어 남한도 더 안전하게 되었다”는 비논리적인 주장을 하곤 하였다. 북한은 자신들의 노선은 지난 역사에서 얻은 교훈이며, 일제강점기 무장독립투쟁 노선만이 올바른 노선이었다는 주장과 맥을 같이하는 것이라고 했다.
북한이 그토록 우려하는 강대국의 군사력에 의한 자주권 침탈 가능성을 낮추려면 외부에 대한 개방과 경제 교류, 인권 개선 등을 실행하면 된다. 제국주의 침략에 반대하는 투쟁은 군사력만으로 이루어지지 않으며, 법치와 민주, 인권이 실현되는 국가를 건설하는 것이 현대적인 자주투쟁의 지름길이라는 점을 북한은 알아야 한다. 그럼에도 북한이 시대착오적인 군사적 자주노선을 계속 추구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북한은 자신의 정세 인식이나 군사력에 의한 자주 추구가 잘못되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나아가 북한은 남한 내에서 북한의 노선에 대해 상당한 지지가 있고, 심지어 북한의 주장이 제대로 남한 사회에서 전달되기만 하면 다수가 지지하게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실제로 개성공단의 북한 사람들은 남한 사람들에게 이처럼 설득력 없는 자신들의 주장을 장황히 설명하기도 했다.
그렇다면 북한이 자신의 군사적 자주노선이 잘못되었음을 깨닫게 하는 방법은 무엇일까. 남한 사회에서 그 노선이 공개적으로 토론되어 알려지더라도 남한 사회의 다수가 이를 지지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것이다. 남한의 일부 사람들은 북한의 주장이 남한 내에서 공공연히 전달되면 적화통일이 될 수 있다고 우려한다. 그러나 우리 국민은 군사적 자주노선이 개방화된 한국이 취할 수 있는 노선이 아님을 이미 생활 속에서 잘 알고 있다.
북한의 주장을 정확히 소개하고 극복하는 것이야말로 사상의 자유경쟁 시장에서 여러 가지 사상이 소개되고 국민적 합의를 모아간다는 자유민주주의의 원리로서 표현의 자유가 발현하는 과정이다. 이와 같은 방식으로 북한의 주장을 극복하는 것이 헌법 제4조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 입각한 평화적 통일 정책”에 진정으로 부합하는 통일정책이다.
우리 사회는 사회적 동질성의 요청을 인정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사회 내적 갈등의 병존을 인정할 필요가 있다. 변화의 가능성을 전제로 다양성을 포용하는 것이 통일로 가는 길이며, 통일 이후에 우리가 추구해야 할 사회의 모습이다. 국정화 교과서는 통일에 역행한다.
김광길 변호사·전 개성공단관리위원회 법무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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