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연말 우리 사회를 떠들썩하게 한 서울시립교향악단 박현정 전 대표의 성희롱 사건이 다시 수면으로 떠올랐다. 당시 언론은 앞다퉈 ‘무너진 여성 리더’의 모습으로 집중보도를 하더니 이제는 반대의 입장들을 쏟아내고 있다. 애초 이 사건은 17명의 서울시향 사무국 직원들이 박 대표 퇴진을 요구하는 호소문을 언론에 보내 알려졌고, 서울시 인권센터에 인권침해 사안으로 접수됐다. 이를 조사한 서울시 시민인권보호관은 박 대표의 언어적 성희롱과 언어폭력에 의한 인권침해를 인정하고, 서울시장에게 박 대표의 징계 및 예방대책 마련을 권고했다. 이후 박 대표는 사임했고, 시민인권보호관으로부터 성추행 피해를 인정받지 못한 시향 직원은 박 전 대표를 형사고소했으나 무혐의 처분이 내려졌다. 나아가 경찰은 고소인에 대해 무고 혐의로 사전구속영장을 청구했으나 법원은 이를 기각했다. 현재 서울시향 직원 10명이 박 전 대표의 고소로 명예훼손 혐의에 대해 조사를 받고 있다.
복잡하게 얽혀 있는 이 사건은 아직 수사가 진행 중이어서 섣불리 결론을 예단할 수 없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시민인권보호관의 결정 내용과 경찰 조사 결과는 사실관계가 배치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시민인권보호관은 언어적 성희롱과 언어폭력에 의한 인권침해를 인정했지만 성추행은 인정하지 않았고, 경찰은 성추행 부분에 대해서만 조사해 무혐의 처분했다. 그런데도 최근 서울시의회의 2015년 문화본부 행정사무감사에서 이 사건이 다뤄진 방식은 여러모로 아쉬움과 과제를 남긴다. 무엇보다 방청석에서 본 시의원들의 질문 내용 및 태도는 이 문제의 핵심을 아는지 의심하게 했다. 감사에서는 이 사건을 조사한 시민인권보호관(인권 옴부즈만)이 증인으로 소환되었다. 시민인권보호관은 서울시 인권기본조례를 근거로 직무의 독립성을 보장받고 서울시 행정부를 감시하는 역할을 하는 사람이다. (이 조례는 서울시의회가 제정했다.) 그런데 시의원들은 “성급히 조사했다”, “왜 ○○○은 조사하지 않았느냐?”, “조사기간 중 분리조치 신청을 3번이나 한 이유가 무엇이냐”며, 철저히 조례에 입각해 이뤄진 조사 과정을 문제 삼았다. 이는 인권 옴부즈만 제도의 근본을 뒤흔드는 태도다.
한 시의원은 17명이 모의하여 한 여성 리더를 몰아냈다며, 이들을 밝혀내 징계했느냐고 따져 물었다. 그들은 자신의 피해를 언론에 호소한 이들로, 마땅히 공익제보자로 보호받아야 하는 위치에 있다. 공익제보자를 색출하고 징계하라고 요구하는 시의원들은 우리 사회에 ‘공익신고자보호법’이 있다는 것을 진정 몰랐을까. 의원들은 “가해자가 피해자가 됐다”는 표현을 자주 사용했다. 박 전 대표는 “미니스커트를 입고 다리로 음반 팔아라” “사업손실이 발생하면 장기라도 팔아라” 같은 언어폭력으로 장기간 직원들을 괴롭힌 것으로 조사됐다. 그런데 시의원들은 이러한 사실을 전혀 언급하지 않은 채, 시민인권보호관이 아무 잘못도 없는 사람에게 인권침해자라는 누명을 씌운 것처럼 몰고 갔다. 시민인권보호관 조사 결과에 따르면, 30명의 조사 대상자 중 21명이 박 전 대표로부터의 피해를 보고했다고 한다.
한국성폭력상담소에서 접하는 수많은 피해자들은 주변 사람들로부터 겪는 2차 피해의 고통을 호소한다. 만약 저 자리에 피해자들이 있었다면 어떤 심정이었을까. 대부분 직장내 성희롱 피해자들이 조직에 물의를 일으키는 사람이 되어버리는 현실에서 이 사건 피해자들이 겪었을 고통과 두려움을 우리 사회는 외면하지 않았는가. 많은 이들이 위험 부담을 안고 문제를 드러내는 이유는 혼자만 참아서는 결코 문제가 해결되거나 사회가 변화하지 않음을 알기 때문이다. 이번 사건처럼 지난한 조사과정을 거쳐 성희롱으로 인정되었음에도 1년여 동안 시달림을 받는 피해자들의 인권은 어디에 있는 것일까? 하루 종일 이어진 감사에서 박 전 대표의 인권을 걱정하는 시의원들은 많았으나 수많은 피해자들에 대해 어떤 사후조처가 있었는지를 묻는 의원은 단 한 명도 없었다. 서울시의원들의 인권감수성 교육이 시급히 요구되는 이유이다.
이미경 한국성폭력상담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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