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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냐면] 정신질환자 치료, 차별 없어야 / 최한식…

등록 2015-12-14 19:05

3년 전 필자는 장기입원 환자 심의차 경기도 의정부의 한 정신병원을 방문한 적이 있다. 병원에서 받은 장기입원 환자 현황을 보고 충격에 빠졌다. 조현병 등 정신질환으로 장기입원 중인 환자 중 20년 넘도록 병원 신세를 지고 있는 환자가 부지기수였기 때문이다. 면담 심사에서 그들은 입원이 그토록 장기화되어 이제는 바깥세상이 무서워서 나가고 싶지 않다고 입을 모았다. 이들 대부분은 의료급여 수급자로, 조기 치료를 받고 사회에 복귀할 수 있었음에도 불평등한 처우로 제대로 된 약물 치료를 받지 못하고 만성환자로 전락한 것이다.

모든 국민은 평등하며, 환자 역시 차별 없는 처방을 받아야 한다. 하지만 사회의 따가운 시선을 받는 정신질환자, 특히 그중에서도 경제적으로 어렵게 생활하는 의료급여 대상자들은 건강보험 환자들과 진료 수가가 달라 좋은 약제를 처방받기 어렵다. 의료급여는 건강보험과 같은 맥락에서 생활이 어려운 기초생활수급자를 대상으로 의료 서비스에 수반되는 비용 일부를 정부가 지원하는 제도이지만, 정신질환자를 위한 의료급여의 목적이 제대로 달성되고 있는지 의문이다.

2008년에 개정된 현행 정신질환 의료급여 수가 기준은 1일 진료비가 2770원에 불과하고, 정액 수가제이기 때문에 어떤 진료를 받아도 지원받을 수 있는 상한선이 2770원인 셈이다. 이는 건강보험 수가(1일 2만7704원)의 10분의 1 수준으로, 같은 진료를 해도 병원이 받는 수가가 달라 의사들조차 의료급여 환자를 기피하는 현상이 생긴다. 한 알에 약 3000원 정도 하는 알약을 처방해도 병원과 환자 모두에게 경제적으로 손해이기 때문이다. 경제적으로 어려운 의료급여 대상자들이 좋은 약을 처방받기란 하늘의 별 따기다. 이는 헌법의 이념에 따라 정치·경제·사회·문화 등 생활의 모든 영역에서 이유 없는 차별을 금지하고자 제정된 차별금지법에 위반되는 처사다.

조현병 등 정신질환은 발생 초기에 적절한 약물 치료를 받으면 정상적인 사회 복귀가 가능하다. 하지만 의료급여 수가체계의 한계로 병원에서는 치료 효과가 떨어지고 부작용이 많은 값싼 약만을 처방하거나, 통원 치료가 가능한 환자임에도 그나마 더 높은 수가를 받을 수 있는 입원을 권장하기도 한다. 이러한 치료 패턴은 좋은 약에 대한 환자의 접근성을 떨어뜨리고 불필요한 입원을 권장해 오히려 정신질환 치료에 대한 국가 비용을 늘리게 된다.

의료급여 수급자가 정신질환으로 평생 한 번 이상 병원을 찾을 확률은 23.4%로, 건강보험 가입자보다 4배 이상 높다. 의료급여 정신질환자를 위한 사회적 보호 장치 마련이 절실하다는 증거다. 최근 보건복지부와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은 정신질환 의료급여 수가의 문제점을 개선하고자 실무협의체를 구성했고 4차례 회의를 진행했다. 필자 역시 환자 가족 대표로서 협의체에 참여했지만 건강보험 혜택과의 차별 해소에 대해서는 제대로 논의되지 않아 답답함만 더했다. 의료급여 환자들을 위한 차별 없는 치료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 정부의 세수를 아끼고 환자의 사회 복귀를 돕는 지름길이다.

최한식 대한정신보건가족협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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