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니 샌더스의 출현으로 미국 민주당 대선후보 경선이 파란을 일으키고 있다. 민주사회주의자를 자처하며 파격적인 정책을 제시하는 그는 사실 민주당과는 어울려 보이지 않는다. 만일 그가 2000년 미국 대선 때 랠프 네이더처럼 제3정당으로 출마했다면, 승자독식 미국 선거제도에서 그뿐만 아니라 민주당 또한 흥행을 맛보기는 불가능했을 것이다. 한편, 그가 만약 독일의 선거제도 아래에서 독자 정당으로 출마했다면, 가령 독일의 녹색당이나 좌파당 후보로 선거에 나섰다면, 총리는 못 되어도 연합정부의 파트너로서 부총리 자리는 거머쥘 수 있을 것이다. 인물도 인물이지만, 선거제도라는 틀을 어떻게 이해하고 움직이느냐에 따라 개인의 거취뿐만 아니라 넓게는 사회 변혁까지 내다볼 수 있음을 한국의 야당들은 샌더스 효과에서 배워야 한다.
4월 총선에 임하는 야권은 사분오열이다. 이는 대선거구제에서, 또는 독일식 정당명부 비례대표제가 가능한 선거에서는 야권의 확장이 될 수 있으나, 지금 우리가 택하고 있는 승자독식 소선거구제에서는 새누리당의 어부지리를 불러올, 야권이 공멸하는 길이다. 난립한 야당들이 표를 나누는 사이 새누리당이 선두를 차지하면, 결국 승리는 새누리당 몫이기 때문이다. 이런 현상이 접전 지역인 수도권과 충청권에서 일어난다면 내년 총선은 새누리당의 압승으로 끝날 것이다.
새누리당의 퇴행과 독주를 막기 위해 범야권은 하나로 모여야 한다. 서로에 대한 불신이 극에 달한 현실에서 말처럼 쉽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각 정당이 다른 당과 공감하는 교집합을 찾으려고 노력한다면 불가능한 일만도 아니다. 모두가 동의할 수 있는 것, “못 살겠다, 갈아엎자”부터 시작해보자. 이 과정에서 거대 야당은 군소 정당의 이탈을 막기 위해 예를 다해 대해야 하고, 진보 정당들은 향후 선거제도 개혁을 위해서라도 새누리당 독주를 막는 대오에 함께해야만 한다.
야권 분열의 핵심은 계파 갈등이 아니다. 문제는 공천권이다. 계파 챙기기로 전락한 하향식 공천 과정에서 정당성이 확보되지 않기 때문에 경쟁자들이 이를 비판하고 반발하는 것이다. 연대를 위해 모인 범야권이 다른 것 제쳐놓고 반드시 합의하고 지켜야 할 원칙은 지역구 및 비례대표 후보를 정함에 있어 나눠먹기식 공천이나 비당원이 참여하는 이상한 공천 룰이 아닌 ‘1인 1표’ 당원 경선을 거치는 것이다. 민주주의 사회에서 당원들이 직접 투표해서 뽑는 것보다 더 정당성 높은 방법은 없다.
새누리당은 과거 쿠데타로 집권했던 세력과는 질적으로 다르다. 군부독재 세력들은 자신의 정당성에 큰 결점이 있었기에 야당 지도자의 단식농성에도 반응을 보였지만, 지금의 새누리당은 선거로 선출되었다는 그 정당성을 무기로 자신이 만든 법과 제도마저도 헌신짝처럼 여긴다. 천인공노할 세월호 참사 이후 새누리당이 보여준 모습을 보라. 100명이 넘는 야당 국회의원들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피켓 들고 광화문광장에 도열하는 것이 전부였던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 야권의 분열 덕분에 이번 총선에서 새누리당이 국회선진화법을 무력화할 수 있는 180석을 얻는다면, 더 나아가 개헌에 필요한 200석 이상을 차지한다면, 야당의 존재감은 사라질 것이며, 국민의 삶은 지금보다 더 지옥을 방불케 될 것이다. 야권이 하나로 뭉쳐야만 하는 절체절명의 이유이다.
선거를 한두 주 남겨놓고 여론조사로 단일후보를 결정하는, 물리적으로 이루어지는 야권연대로는 유권자들의 표심을 얻는 데 한계가 있다. 샌더스 현상처럼, 밑에서 올라오는 당원들의 열광을 이끌어내기 위해서는 화학적 결합이 이루어져야 한다. 야권은 하루빨리 각 당을 해산하고 단일 대오의 프로젝트 정당을 만들어 당원 경선을 준비해야 한다. 각 당의 깃발은 새누리당 독주를 막은 뒤 들어도 늦지 않다.
염광희 베를린자유대 정치학과 박사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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