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 1월27일치 “일본, ‘암 환자 일·치료 병행’ 팔걷었다”라는 제목의 기사를 읽고, 태어나서 처음 일본이 부러웠다. 우리나라는 암환자가 있으면 막대한 치료비로 집안 경제가 휘청거린다. 고가 항암제가 건강보험에서 지원되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는 치료비 때문에 암 치료에 집중하기도 어려운 상황인데, 일본은 치료와 사회생활을 병행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단계다. ‘선진국은 이래서 다르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필자는 30년간 교육 공무원으로서 살아왔다. 늦은 나이에 대학원까지 다니면서 더 훌륭한 교육자가 되고자 하는 꿈을 갖고 있었는데, 재직 중에 희귀 혈액암인 ‘다발골수종’ 판정을 받았다. 하루아침에 하늘이 무너지는 기분과 함께, 우리나라 암환자들이 모두 그러하듯 ‘당연히’ 직장도 꿈도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사표를 내고 재산 정리에 무덤까지 준비했었다.
고맙게도 좋은 의료진과 효과적인 치료 덕분에, 지난 5~6년간은 건강하게 생활할 수 있었다. 하지만 중간에 재발이 되었다. 꼭 필요한 신약이 있음에도 치료을 못 받고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건강보험 적용을 받지 못하는 ‘비급여 항암제’였기 때문이다. 환우회 모임에 가보면 경제적 파탄이 두려워 항암 신약을 써보지도 못하고 정부 지원을 하염없이 기다리다가 운명을 달리하는 이들이 정말 많다. 언젠가 나도 저렇게 되는 것은 아닌지, 치료도 못 해보고 죽음을 기다리는 마음은 정말 고통스럽다.
며칠 전 보건복지부가 2016년 업무보고를 발표했다. 내용 중에는 박근혜 대통령의 공약 사항이었던 ‘4대 중증질환 보장성 강화’ 정책도 포함돼 있었다. 구체적으로는 유도초음파, 수면내시경, 고가항암제 등 200여개 비급여 항목에 대해 건강보험을 적용한다는 내용이다. 고가 항암제가 포함되어 있어 기쁘고 기대도 되지만, 솔직히 걱정도 된다. 과연 저 200여개 항목 중 항암제는 얼마나 포함돼 있을까? 정부는 2013년부터 암에 대한 보장성을 강화해 올해까지 100%를 달성하겠다고 말하지만, 최근 항암제 신약 중 급여율은 20%가 되지 못한다. 내가 앓고 있는 다발골수종은 항암 신약 중 단 1개만이 어렵게 건강보험 급여를 받았을 뿐이다.
암은 가장 흔한 병 가운데 하나가 됐다. 한국인 사망 원인 1위가 바로 암이다. 그러나 일본처럼 생존 이후를 걱정하는 것은 먼 나라의 사치처럼 보인다. 대부분의 암환자들에게 내가 살아남을 수 있을까 걱정이 태산이고, 당장 내일 약값을 어찌 마련할까 생각하며 밤잠을 설친다. 꼭 필요한 항암 신약에 대한 전향적인 건강보험 적용과 치료가 시급한 이유이다.
나아가 우리나라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입국 위상에 맞게 암환자의 ‘일·치료 선순환 구조’를 정책적으로 고려했으면 좋겠다. 암환자들도 잘 치료받으면서 직장생활을 유지할 수 있다. 우리 암환자들도 제대로 된 치료로 건강도 되찾고, 능력을 발휘해 지속적으로 사회에 기여하고 싶다.
전정일 한국다발성골수종환우회 사무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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