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복은 입히는 사람에게는 다수를 지배하고 있다는 느낌을, 입는 사람에게는 일체감과 자부심, 경우에 따라서는 굴욕감을 느끼게 해주는 특수한 의복이다. 관복과 군복뿐이던 제복의 세계에 교복이 추가된 것은 나폴레옹 시대 프랑스에서였다. 이때의 교복은 국민개병제 실시의 일환으로서 모든 남성 국민의 ‘학창 시절’을 ‘군대 시절’의 전 단계로 배치한 것이었다. 교복은 곧 다른 나라들로 확산되었는데, 귀족의 특권이 남은 곳에서는 특수층 자제의 표지 구실도 했다.
우리나라 최초의 교복은 1886년 이화학당이 만든 다홍색 무명 치마저고리였다. 이런 교복을 만든 목적은 혼자서는 남사스러워 밖에 나갈 수 없게 하는 데 있었다. 당시의 이화학당 기숙사는 창살 없는 감옥이었고 교복은 사실상의 죄수복이었다. 남학생 교복은 1898년 배재학당이 처음 만들었다. 검은색 양복과 모자에 붉고 푸른 선을 두른 이 교복은 당시의 신식 관복과 흡사한 것으로서 권위, 개화, 문명 등의 의미를 담았다.
일제 강점기에도 여학생 교복은 학교별로 각각이었으나, 남학생 교복은 일본군 정복 양식을 기본으로 했다. 그 시절에는 중등교육을 받는 사람이 드물었기 때문에, 교복도 권위 있는 옷이었다. 태평양전쟁을 앞두고 일제는 한국의 젊은이들을 군대로 끌어가기 위한 사전 조치로 교복을 군복화했다. 이에 남학생 교복은 육군 전투복, 여학생 교복은 해군복과 흡사한 모양으로 통일되었다. 해방 후 전시 교복 양식은 사라졌으나 식민지 교복은 존속했다. 중등교육이 일반화함에 따라, 교복은 전 국민의 몸을 6년간 감싸는 옷이 되었다.
1968년, 정부는 중학교 교복과 교모를 하나로 ‘통일’하도록 지시함으로써 ‘국정 교복’의 시대를 열었다. 이 무렵부터 졸업식장에서 교복에 분풀이하는 퍼포먼스도 시작되었다. 획일적인 국정 교복이 사라진 뒤 교복에 대한 분풀이는 현저히 줄었으나, 한국의 학생들은 여전히 세계에서 가장 힘겨운 학창 시절을 보내고 있다.
전우용 역사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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