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오피니언 왜냐면

[왜냐면] “푸라 비다”…코스타리카 인사말의 함의 / 허훈

등록 2016-02-29 18:59수정 2016-02-29 19:26

‘안녕들 하십니까?’ 몇 해 전 온 나라에 번졌던 대자보들의 제목이다. 제목만 보면, 우리의 이웃들의 안부를 묻고 있다. 그런데 중미의 코스타리카 사람들은 이렇게 인사를 한단다. “푸라 비다(Pura Vida)!” 스페인어로 “순수한 삶”, “인생은 좋은 것”, 혹은 “다 잘될 거야”라는 뜻이다. 무언가 깊은 함의가 느껴진다.

우리의 인사말 ‘안녕’(安寧)은 말 그대로 ‘아무런 탈이나 걱정이 없어 편안한가?’를 묻는 것이다. ‘편안함과 편안하지 아니함’을 묻는 ‘안부’(安否)의 사전적 의미와 별반 다르지 않다. 과거 우리 어르신들의 인사말은 “식사는 하셨습니까?”였다. 배고팠던 시절에 끼니는 거르지 않았는지 염려하는 마음에서 나온 말이다. 어느 사상가의 말처럼 “의식은 현실의 반영이다”. 우리가 당장 누군가에게 “안녕하세요?” 대신 “인생은 좋은 것이야!”라고 인사를 건넸다고 해보자. 상대는 얼마나 황당하다고 느낄까. ‘의식이 현실의 반영’이라면 코스타리카 사람들의 현실은 과연 어떻기에 삶을 찬미하는 인사말을 상용하는 것일까.

지난해 코스타리카는 지구행복지수(HPI) 국가별 순위에서 1위였다. 무엇보다 먼저 눈에 띄는 것은 ‘군대를 없앤 나라’라는 것이다. 이미 1948년에 군대를 없앴고 국방비로 들어갈 돈을 교육이나 복지, 의료, 친환경 같은 분야에 투자하여 삶의 질이 높아지고 국민들의 생활만족도가 세계에서 가장 높은 나라가 되었다는 것이다. 아마도, 코스타리카 국민들은 군대가 존재하지 않으니 전쟁 같은 것은 꿈에서도 생각지 않을 것이다. 실제로 군대를 폐지한 이후로 지금까지 70년이 다 되어 가지만, 전쟁은 없었다.

그렇다면 우리의 현실과는 너무나 동떨어진 유토피아 같은 얘기에 불과한 것이 아닌가. 우리는 주적(主敵)이 있고, 호전적인 적의 위협에 시달리고 있으니 말이다. 이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하지만 코스타리카는 중미 5개국의 평화협정을 맺도록 주선했으며, 이웃나라 파나마의 군대까지 폐지케 했다. 더구나 2013년 유엔에서 무기거래금지조약(ATT)까지 통과시켰다. 이것 또한 분명한 현실이다. 그들의 답변에 해결책이 있다. 이웃나라와 문제가 발생하면 ‘대화’를 통해 해결하고, 또 ‘많은 대화’로 오해를 풀어버리라는 것이다.

유엔본부 건물 안에는 도표가 하나 붙어 있다. 이에 따르면 1년 동안 전세계의 군비 지출 총액이 자그마치 7800억달러에 이른다. 그런데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49개국의 부채를 탕감하는 데는 고작 300억달러가 든다. 또 모두에게 식수를 공급하고, 영양실조나 기아를 퇴치하는 데는 각각 190억달러가 필요할 뿐이다. 유엔 건물에 그런 통계치를 게시하는 것 자체가 우리 스스로를 계몽하고자 함이 아닐까. 그런데 왜 우리는 그런 문제점을 인지하면서도, 변화를 위한 적극적인 실천을 못 할까.

현재 70억 인류 가운데 8억명이 굶주림에 시달리고 있다. 분명한 현재 상황이다. 더욱 놀라운 사실은 기본적으로 지구 전체의 식량이 ‘부족’하기 때문이 아니라 ‘유통’이 되지 않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한쪽에서는 굶주려 죽는 사람들이 계속 나오는데 또 다른 한쪽에서는 식량을 허비하고 버리기까지 한다. 우리는 얼마나 어리석은 행동을 하고 있는가.

최근 한반도는 온갖 최첨단 무기의 전시장이 되었다. 미사일 한 발이 100억원대를 훨씬 상회하고, 전투기 한 대 가격이 수백억~수천억원에 이른다고 한다. 우리가 전쟁의 위협에서 벗어날 수 있다면, 아니 우리가 전쟁 자체를 우리의 삶에서 배제한다면, 그때쯤 우리도 ‘안부’의 인사가 아니라, “인생은 좋은 것!”이라는 멋진 인사말을 자연스럽게 건넬 수 있지 않을까.

허훈 철학박사, 철학·윤리 교사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오피니언 많이 보는 기사

윤석열이 연 파시즘의 문, 어떻게 할 것인가? [신진욱의 시선] 1.

윤석열이 연 파시즘의 문, 어떻게 할 것인가? [신진욱의 시선]

“공부 많이 헌 것들이 도둑놈 되드라” [이광이 잡념잡상] 2.

“공부 많이 헌 것들이 도둑놈 되드라” [이광이 잡념잡상]

‘단전·단수 쪽지’는 이상민이 봤는데, 소방청장은 어떻게 알았나? 3.

‘단전·단수 쪽지’는 이상민이 봤는데, 소방청장은 어떻게 알았나?

극우 포퓰리즘이 몰려온다 [홍성수 칼럼] 4.

극우 포퓰리즘이 몰려온다 [홍성수 칼럼]

‘영혼의 눈’이 썩으면 뇌도 썩는다 5.

‘영혼의 눈’이 썩으면 뇌도 썩는다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