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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우용의 현대를 만든 물건들] 신용카드

등록 2016-03-07 19:17수정 2016-03-07 20:16

을사늑약 이듬해인 1906년 정월 초, 서울에 있던 한 외국인은 ‘거리 곳곳에 시체가 널렸다’고 기록했다. 희망이 있건 없건 모두가 희망을 말하는 새해 벽두에, 남의 눈에 잘 띄는 거리에서 죽은 사람들은 누구였으며, 도대체 왜 그랬을까? 1905년 여름, 일본 대장성 주세국장(主稅局長)으로 있다가 대한제국 재정고문으로 부임한 메가타 다네타로는 한국의 재정, 금융, 화폐 제도 전반을 강압적이고 전격적으로 ‘개혁’했다. 이로 인해 시중에 돈이 말라 경제는 마비되고 숱한 상인들이 파산했다.

해를 넘긴 빚을 ‘묵은빚’이라 한다. 이 시대까지 묵은빚은 탕감해주는 게 관례였다. 그렇다고 해가 바뀔 때까지 안 갚고 버티는 게 능사는 아니었다. 새해에 다시 빚을 지더라도 일단은 섣달그믐 이전에 청산하는 게 채무자의 도리였다. 묵은빚을 탕감받는 것은 자기뿐 아니라 자기 자식까지 다시는 빚을 질 수 없게 만드는 일이었다. 직업이 세습되던 시대에 상인이 돈을 융통할 수 없게 된다는 것은 사회적 사망선고였다. 그 시절 사람들에게 사회적 생명, 즉 신용은 물리적 생명 못지않게 중요했다. 그래서 새해 전에 빚을 갚을 수 없는 처지가 되면, 평생에 걸쳐 쌓아온 신용을 무너뜨리는 쪽보다는 채권자가 알 수 있는 장소에서 목숨으로 갚는 쪽을 택하는 사람이 많았다.

1969년 6월14일, 일본 도쿄에서 제작된 플라스틱 카드 178장이 신세계백화점에 도착했다. 신세계백화점은 이 카드를 삼성그룹 간부들에게 지급하여 7월1일부터 사용하도록 했다. ‘외상거래 허가증’이던 이 신용카드는 곧 ‘담보 없이 빚질 수 있는 자격증’ 구실도 겸했다. 이 카드를 받기 위해서는 ‘신용등급’이라는 새로운 신분질서에 편입되어야 했으나, 사람들은 너도나도 이 카드를 받으려 애썼다.

오늘날 한국 성인들은 누구나 몇 개씩 신용카드를 갖고 있다. 이 작은 카드는 외상거래와 빚지는 일에 대한 심리적 부담을 최소화했다. 그래서일까? 신용을 지키려는 현대인의 의지도 신용카드처럼 작고 얇아진 듯하다.

전우용 역사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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