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째 텔레그램 가입 알림음이 잇따라 울린다. 앱 다운로드 순위나 사용자 수 같은 걸 굳이 살펴볼 필요도 없다. 테러방지법 강행을 기획, 집행, 찬성했던 사람들도 앞다투어 텔레그램으로 갈아타고 있다.
“망명을 환영하오.” 장난스럽게 인사를 하자 “망명이 아니라 피난입니다”라는 진지한 답이 돌아온다. 심란하지만 적절한 표현이다.
2년 전 검찰의 카카오톡 검열에 반발한 ‘1차 텔레그램 갈아타기’는 말 그대로 지사적 항변의 망명이었다면 테러방지법 통과를 계기로 한 ‘2차 갈아타기’ 흐름은 불안감에 기초한 다중의 피난이 맞다. 그리고 아마도 이 상황은 꽤 오래갈 것이고 기존의 관행을 상당히 바꿀 것 같다. 보수적인 경제지들도 ‘토종 아이티(IT) 기업들’의 피해를 우려하고 종편들은 전문가라는 사람들을 내세워 국산 메신저에도 비밀채팅 기능이 있다는 주장만 반복하고 있다.
한참 잘못 짚었다. 왜 지사적 망명이 아니라 다중의 피난일까?
테러방지법 강행을 기획한 세력은 미처 가늠하지 못했겠지만 그들은 온라인 소비자 대중의 근본적인 불안감을 건드렸다. 사실 스마트폰에서 간단한 앱 하나를 설치해도 대략 10가지 안팎의 개인정보 제공에 부지불식간에 동의하게 된다. 소비자들이 이것에 둔감한 이유는 앱 제공업체를 믿기 때문이다. 그런데 2014년에는 굴지의 메신저 업체가 권력기관의 탈법적인 요구에 쉽게 굴종했고 이번에는 아예 그런 잘못된 관행을 법으로 강제하자 대규모 피난민이 된 것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소비자는 언제나 봉이지만 때로는 무서운 반격을 한다. 논란의 여지는 있지만 이른바 ‘공유경제’에 소비자들이 환호하는 이유는 독점적인 시장권력에 대한 소비자 권력의 재발견이라는 측면도 있다. 정보화가 가속될수록 침해되기 쉬운 개인의 프라이버시를 보호하고 자존감을 높여주는 것이 정부의 책무일진대 이것을 너무 쉽게 짓밟아버리자 누가 시킨 것도 아니고 텔레그램이 대규모 광고를 한 것도 아닌데 대탈주를 감행한 것이다.
반격은 소비자 대중으로부터 시작되었고 이 대중은 온라인 서비스 소비자일 뿐만 아니라 정치적 소비자이기도 하다. 테러라는 공포마케팅으로 정치적 이득을 취하려던 세력은 총선을 앞두고 매우 불안해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한편 한국의 아이티(IT) 업계도 깊은 성찰을 해야 한다. 소비자들의 생활에 큰 영향을 미칠 테러방지법에 누구도 목소리를 내지 않다가 이제 와서 피해자 코스프레를 하거나 애국심 마케팅으로 순간의 위기를 넘기자고 하면 상황은 더 나빠질 것이다. 나아가 사이버테러방지법 제정 시도에도 한국 아이티 업계가 침묵한다면 소비자들의 외면을 받는 것은 물론 국제적인 웃음거리가 될 것이다.
망명이든 피난이든 그것을 나쁘게만 볼 일은 아니다. 소비자들이 자기들의 힘을 발견하고 실행에 옮기는 것은 경제발전에도 큰 도움이 될 것이고, 그것이 곧 창조경제 아닌가?
정호희 #문자당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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