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 집, 옷, 이름, 웃음, 눈물, 글, 시(詩)의 공통점은? 정답은 ‘짓는 것’이다. 마음으로 만드는 것이 짓는 것이다. 어떤 것은 얼굴 근육만 쓰고 어떤 것은 손과 도구를 사용하지만, 그래도 마음 깊은 곳에서 우러나는 정성과 사랑이 더 중요한 것들에 대해 우리는 ‘만든다’는 말 대신 ‘짓는다’는 말을 쓴다.
쌀을 일어 겨와 잔돌 등을 골라낸 뒤 쇠솥에 안치고 물을 부어 끓이다가 쌀이 다 익으면 불을 빼고 솥의 잔열로 뜸을 들이는 조리법이 개발된 것은 삼국시대로 추정된다. 이후 1천 년 넘게 이 방법은 입에서 입으로, 손에서 손으로 면면부절 이어졌다. 하지만 밥 짓는 법을 아는 것과 제대로 짓는 것은 다른 문제다. 밥 짓는 도중 잠시만 다른 곳에 정신을 팔아도 밥이 잘못되기 일쑤였다. 같은 사람이 짓는 밥이라도 때에 따라 진밥, 된밥, 선밥, 삼층밥이 되곤 했다. 그래서 밥맛은 밥 지은 사람의 마음 상태를 비추는 거울이기도 했다.
1958년, 일본에서 전기밥솥이 처음 발명되었다. 철제 밥솥에 그어진 눈금에 맞춰 씻은 쌀과 물만 넣으면 스스로 알아서 끓이다가 뜸을 들이고 따뜻한 상태로 유지해주는 이 기계는, 밥을 짓는 것에서 만드는 것으로 바꿔 놓았다. 이로부터 10년 뒤에는 국산 전기밥솥이 나왔고, 다시 20여 년 뒤에는 거의 모든 사람들이 전기밥솥이 만든 밥만 먹게 되었다. 이른바 ‘인공지능’을 처음 장착한 것도 전기밥솥이었다. 오늘날에는 누룽지를 만들어 옛날 가마솥밥과 비슷한 맛을 만들어내는 똑똑한 전기밥솥도 있다.
인공지능을 갖춘 기계의 놀라운 바둑 실력을 보고 기계가 인간을 지배하는 디스토피아를 걱정하는 사람이 많다. 하지만 마음이 담기지 않은 밥을 먹는 데 익숙한 현대인이기에, 설사 마음 없는 기계가 인간의 일 대부분을 대신하는 세상이 오더라도 그리 걱정할 필요는 없을 듯하다. 인류가 여러 차례 겪었듯이, 끔찍한 재앙을 부르는 악마는 마음 없는 기계가 아니라 탐욕으로 얼룩진 더러운 마음을 가진 인간들이다.
전우용 역사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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