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0년대, 초등학교 선생님은 자주 우리를 번호로 불렀다. 학생 수가 워낙 많았던 시절이었으니 때로는 그게 더 효율적이었겠지만 나는 내가 번호로 불리는 게 참 싫었다.
서른이 다 돼서 시작한 미국 유학 시절, 첫 학기에 친구들은 내 이름을 잘 기억하지 못했다. 혹은 내 영문 철자 속의 W를 정확히 발음하는 바람에 전혀 내 것 같지 않은 어색한 이름으로 나를 불렀다. 어느 날 별생각 없이, 한국이름이 정 불편하면 내 가톨릭 세례명으로 부르라고 했더니, 그들은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나를 그렇게 불렀고 더는 아무도 나를 한국이름으로 부르지 않았다.
몇 년 전, 유학 시절에 만난 20년 지기 덴마크 친구와 여행을 했다. 서로의 여권 속 사진을 보며 키득거리다 친구는 내 여권 이름이 자기가 아는 것과 다른 걸 알고 깜짝 놀랐다. 자초지종을 설명했더니, 진작 얘기했으면 “너의 진짜 이름을 정확히 발음하기 위해 내가 더 노력했을 텐데”라며 아쉬워했다. “지금부터라도 그렇게 불러줘”라고 했더니 잠시 생각해 보다가 “그건 힘들 것 같다”고 했다. 다른 이름으로 부르는 순간 내가 전혀 다른 사람으로 느껴진다고 했다. 20년간 우리가 맺어온 “관계”의 주체가 혼란스럽다고도 했다. 내 이름도 내 몸과 마음처럼 내 정체성의 일부일 수 있겠구나, 게다가 이름은 내가 아닌 타인에 의해 끊임없이 불린다는 점에서 내가 누군가와 관계 속에 놓인 존재임을 알 수 있는 도구이겠구나 싶었다.
신영복 선생의 책 <담론>에는 고암 이응노 선생과 한 수감자의 일화가 소개된다. 수번으로 사람을 부르는 감옥에서 굳이 ‘응일’이라는 이름을 물어, 그가 하나의 숫자가 아니라 ‘뉘 집 큰아들’임을 상기시켰던 이야기. 숫자로 불릴 때는 드러나지 않던 한 수감자의 정체성은 응일이라는 이름 속에서 구체화된다. 그리고 그 일화는 초등학교 때 내가 번호로 불렸을 때의 감정과 덴마크 친구와의 대화 속 깨달음이 무엇이었는지를 일깨웠다.
“이성교제를 시도하면 무조건 퇴출, 친해지면 안 되기 때문에 통성명을 금지하고 이름 대신 번호로만 부른다.” 며칠 전 뉴스에서 전했던 스파르타식 토익학원의 생활수칙이다. 대한민국 사회에서 취업·승진·진학 등에 쓰이는 무소불위의 평가지표인 토익, 그 시험이 오는 5월에 크게 바뀐다. 대폭 어려워진다고 한다. 그러니 바뀌기 전 고득점 막차를 타려는 학생들의 공포감과 다급함을 자극한다면, 수험생들은 학원이 제시하는 어떠한 생활수칙도 비판 없이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아니 오히려 사랑이나 우정 따위에 시간낭비 못하게 누군가가 애초에 가능성의 뿌리를 뽑아줘야 한다.
이계삼은 그의 책 <변방의 사색>에서 ‘메가스터디’를 만든 손주은의 특강 동영상을 언급한다. 동영상 속에는 차마 입에 담지 못할 욕설과 폭력의 위협이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학생들은 서슴없이 복종했다고 한다. 이계삼은 묻는다. 열일곱 열여덟살 청소년들에게 폭언을 쏟아부어도 고발당하기는커녕 열광적으로 복종할 수밖에 없는 현상을 만든 사람은 대체 누구인가.
나도 묻고 싶다. 내가 악몽처럼 기억하는 번호로 불린 세월이 거꾸로 거슬러 올라와, 나를 통제하고 관리하려는 사람에 의해서가 아니라 내 꿈과 목표를 위한 도구로 활용돼도 괜찮은 이 학벌지상주의 현실을 만든 것은 무엇인가? 알파고의 출현으로 인간이란 무엇인가라는 철학적 질문이 회자되는 것처럼, 서로의 이름조차 물을 수 없는 토익학원의 출현을 보며 나는 인간이 이름을 부른다는 것, 이름으로 불린다는 것에 철학적 질문을 하게 된다.
김진우 건국대 디자인대학 교수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