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7년 11월11일, 밤 9시15분, 다이너마이트 22톤 등 30톤의 폭발물을 싣고 전라북도 이리역 구내에 정차해 있던 열차 안에서 폭발이 일어났다. 폭음은 이리시(현 익산시) 전역은 물론 도시 밖까지 울렸으며, 열차가 있던 장소에는 깊이 15m, 직경 30m의 웅덩이가 파였다. 이 폭발로 59명이 사망하고 185명이 중상, 1158명이 경상을 입었다. 811동의 가옥이 완전히 무너졌으며, 6800동 가까운 가옥이 크고 작은 피해를 입었다. 이재민 수는 1674가구 7873명. 사람들은 미리 학습한 대로 북한의 테러를 의심했으나, 원인은 폭발물 운반 책임자의 부주의였다.
1866년 스웨덴 사람 노벨이 발명한 다이너마이트는 자연을 개발하는 인간의 능력, 달리 말하면 인간의 자연 파괴 능력을 비약적으로 신장시켰다. 다이너마이트는 광산, 채석장, 도로 공사장, 댐 공사장 등에 두루 쓰이면서 곡괭이와 삽에 의존해왔던 과거의 인간들을 비웃었다. 하지만 자연을 쉽게 파괴하는 물건은 인간의 생명도 쉽게 파괴하는 법이다.
1896년 4월, 인천항에 입항한 일본 선박에서 다이너마이트를 발견한 해관원은 그의 양륙(揚陸)을 거부하고 되돌려 보냈다. 이것이 다이너마이트에 대한 우리나라 최초의 기록이다. 물론 다이너마이트가 위험한 물건이라는 사실을 안 해관원은 영국인이었다. 그러나 다이너마이트 금수 조처는 외국인들에게 광산 채굴권을 허용함에 따라 곧 풀렸다. 1890년대 말부터 전국 곳곳의 광산과 채석장, 철도 공사장에서 다이너마이트 폭발음이 울리기 시작했다. 더불어 발파 사고로 인해 죽거나 다치는 사람도 계속 나왔다. 국산 다이너마이트는 1958년에 처음 나왔다.
폭탄테러에 대한 공포가 전세계를 뒤덮고 있다. 현대인들은 죄 없는 사람을 죽이는 폭탄 테러범들을 증오하며, 그들을 잡기 위해서라면 사생활의 권리까지 국가에 양도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자기들이 지난 150년간 똑같은 물건으로 수많은 죄 없는 생명체들에게 예고 없는 테러를 자행해왔다는 사실은 생각조차 않는다.
전우용 역사학자
전우용 역사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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