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리가 시끄럽다. 총선이 다가오는 까닭이다. 내가 다니는 학교의 지역구에는 5명의 후보가 출마했는데, 그중 당선이 어려워 보이는 후보, 당선이 불가능해 보이는 후보, 애당초 당선이 목적이 아니었던 듯한 여당 출신 무소속 후보의 선거유세는 언제나 진한 안타까움을 흩뿌리며 지나간다.
이번 총선 소식을 들을 때면 나는 최근 있었던 또 하나의 선거를 자연히 생각하게 된다. 한 달여 전에 치러진 학생회장 선거다.
각 당, 각 세력, 각 후보의 역대급 흑역사를 남기며 치러진 이번 20대 총선이라지만 고등학교 학생회장 선거에 비하면야 민주주의의 살아 있는 모범이라고 불릴 만하다. 그만큼 고등학교 학생자치 제도는 문제가 많다. 이는 학교 특유의 보수성과 대한민국의 입시제도에 기인한 바가 크다.
중학생 시절까지 포함해서 올해로 6번째 학생회장 선거를 겪었지만 매번 이 귀찮은 짓을 왜 하는지 의문이 든다. 학생회는 어용단체 그 이상이었던 적이 없다. 학생회란 조직의 존재 의의가 뭔가. 학생자치를 통한 권리의 실현과 민주주의의 학습 아닌가. 그런 것들은 현실에선 이름뿐인 허상에 불과하다. 사실상 학생회의 모든 행동은 교장의 승인이 필요하다. 여기에 무슨 놈의 권리가 있고 민주주의가 있나.
지난해 학생회는 어용단체로서 자신들의 운명을 빠르게 수용하고 일찌감치 축제 준비에 매진하는 합리적인 모습을 보여주었다. 그나마 게임 때 쓸 상품을 구입할 예산을 받아내기가 힘들어, 준비위원회가 단체로 헌혈을 해서 영화표를 구해올 계획을 세우기도 하였다. 예산도, 권한도 없는 학생회가 뭘 할 수 있겠나? 또 학생들의 대표기구에 아무런 권한이 없다는 건 뭘 의미하나. 학생들을 인격체가 아닌 관리와 통제의 대상으로 보기 때문이 아닌가?
또 한 가지. 학생회장 자리는 별 권한이 없음에도 학생들에게 충분히 탐나는 감투일 수밖에 없다. 한갓 명예욕 때문이 아니다. 실질적으로 입시에 매우 큰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최근 입시 트렌드는 ‘학생부 종합 전형’이다. 학생의 독서 이력, 동아리 활동, 봉사활동 등 다양한 영역을 평가하는 이 전형에서 학생회장 경험은 매우 높게 평가된다. 리더십이 증명된다는 거다. 리더십은 개뿔이 리더십인가. 학생들은 학생회장 후보의 ‘빌 공’(空)자 공약에는 전혀 관심이 없다. 인맥으로 표를 끌어오는 것 역시, 아무리 사교적이고 발이 넓은 후보라도 한계가 있다. 여기서 도출되는 선거 전략은 실로 기괴하다. 웃음을 파는 것이다.
각 후보들은 방송연설 기회를 한 차례씩 얻는다. 초·중·고 모두 그랬으니 아마 무슨 조례 같은 걸로 정해져 있을 게다. 여기서 후보들은 대부분 개그를 통하여 자신의 이름을 각인시키려 애쓴다. 그런 후보들의 연설을 지켜보기는 힘들다. 입시가 걸려 있으므로 나름대로 절박할 텐데, 절박함의 속성이란 웃음과 맞지 않는다. 전교로 송출되는 방송이기도 해서, 어색함을 떨쳐내기란 힘들다. 결국 제대로 웃기는 데 성공한 ‘웃긴’ 후보 한둘 중 아무나가 당선된다.
이런 소꿉장난을 견디기 힘들어 나는 올해 일부러 내 표가 무효표가 되도록 기표했다. 잠시나마 기분은 좋았다. 다만 이런 소심하고 찌질한 반항은 잠깐의 쾌감 뒤에 긴 자괴감을 남긴다. 굳이 이 글을 쓴 이유다.
익명의 고등학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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