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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왜냐면

[왜냐면] 범죄로부터 안전한 사회로 가는 길 / 염형국

등록 2016-05-30 21:23




“만약에 누군가가 미쳤다면, 나라 안에서는 그가 모습을 드러내지 않게 할 것입니다. 그 각각의 친척들이 제 가정에서 이들을 보호하게 할 것입니다. 그러지 못할 경우에는 벌금을 물게 할 것입니다.”(플라톤 <법률> 중에서)

2400여년 전 플라톤은 도시국가의 안전을 위해 정신질환자를 가정 내에서 보호(?)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서울 강남역 살인사건을 수사 중인 경찰은 이번 사건을 정신질환자의 ‘묻지마 범죄’라고 서둘러 결론 내리고, 정신질환자 위험도 체크리스트를 일선 경찰에 배포해, 필요할 때 정신질환자를 적극적으로 행정입원 조처하는 체계를 구축하겠다는 대책을 내놓았다.

<광기의 역사>를 저술한 미셸 푸코에 의하면, 근대사회는 이성과 자유의지를 가진 ‘생각하는 나’라는 근대적 이성으로 정의된다. 이러한 근대적 이성의 탄생은 그 안으로 포섭될 수 없는 존재들에게 ‘타자’의 자리를 부여하였다. 이성이 지배하는 사회 안으로 들어갈 수 없는 타자들의 자리는 항상 ‘외부’였다.

우리 사회에서 정신질환자들은 늘 타자로서 외부에 존재하였다. 강력범죄가 발생할 때마다 언론과 경찰은 종종 일부 비정상적인 정신질환자들의 병적인 행위로 치부하였다. 강력범죄가 발생하였을 때 그 문제를 축소시키는 가장 손쉬운 방법이 정신질환자의 소행으로 몰아가는 것이다. 이로 인해 정신질환자에 대한 사회 일반의 불안과 낙인은 계속해서 확대 재생산되었다. 현재 한국 사회는 부적응한 자들에 대한 배제 기제가 넘치게 작동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의 편견과 다르게 공식통계만 보더라도 실제 정신질환자들의 범죄율은 일반인에 비해 낮은 편이고, 급성기 때의 적절한 치료와 질환 유지를 통해 정상적인 사회생활도 가능하다고 한다. 정신질환을 실험실에서 확인하는 검사법은 아직 없고, 비정상 혹은 정신질환에 대비되는 정상은 정의될 수 없다. 즉, 강남역 살인사건에 관해 정신질환자를 행정입원 조처하고, 공용화장실을 개선한다는 경찰과 정부의 범죄예방 대책은 결코 그 목적을 달성할 수 없다. 이는 청년실업 및 여성 혐오·차별과 같은 사회의 구조적인 문제를 개인의 질병 문제로 축소시키는 것이기 때문이다. 오히려 이 사안의 해결은 사회에 만연한 여성혐오 범죄에 대한 단호한 처벌이어야 하고, 청년실업과 빈부격차의 문제 해결을 위한 사회안전망 강화이어야 한다.

우리 사회는 안타깝게도 1% 승자독식의 사회, 금수저의 사회가 되었다. 사회적 재화 배분에서 소외된 99%는 분노를 퍼부을 대상을 찾고, 사회 전반에 걸쳐 불신과 불안, 막연한 공포가 널리 퍼져 있다. 많은 이들은 정신질환자를 희생양 삼아서 이들로 인해 사회가 불안해졌으므로 사회에서 격리해야 한다며 마음껏 분노를 퍼붓고 있다.

범죄로부터 안전한 사회를 원한다면, 1% 승자독식의 금수저들만의 사회를 바꿔야 한다. 절대다수를 차지하는 99%에 속한 우리는 모두가 약자이다. 서로의 약함을 들여다보고 서로 함께하여야 한다. 5월17일 강남역에서 발생한 비극적인 살인사건으로 인해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난 고인의 명복을 빈다.

*덧말: 플라톤은 지혜와 용기·절제의 덕을 조화롭게 갖춘 (여성, 노예, 정신질환자, 외국인 등이 배제된) 정의로운 아테네 남성들만의 사회가 이상사회라고 주장하였다.

염형국 변호사·공익인권법재단 공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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