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세돌 9단이 프로기사회를 탈퇴한다고 발표하자 활기 넘치던 한국의 바둑계가 치열한 눈치작전을 벌이고 있다.
대략 이슈는 세 가지로 압축된다. 하나는 프로기사회가 기사들이 받은 상금의 일정 비율을 강제 징수하는 것이 타당하냐는 것이다. 이 문제는 회원들이 총의로 결정할 문제다.
더 중요한 문제는 프로기사의 기사회 의무 가입 조항과, 이세돌 9단처럼 프로기사회를 탈퇴하는 기사들의 경우 한국기원이 관여하는 기전에 출전할 수 없다는 강제규정의 타당성이다. 이 두 문제는 스포츠산업으로서의 바둑 경기의 발전에 중대한 영향을 주는 사안이기 때문에 인간성이나 윤리의 문제를 떠나 법적으로 허용되는 사안인지 따져볼 필요가 있다.
공정하고 자유로운 경쟁을 촉진하여 창의적인 기업 활동을 조장하고 소비자를 보호하기 위해 제정된 공정거래법은 사업자단체가 경쟁을 제한하거나 불공정한 거래를 하는 것을 금지하고 있다.
우선 프로기사회가 사업자단체인지부터 살펴보자. 공정거래법은 물건이나 용역을 제공하고 보수 등 반대급부를 받는 모든 행위자를 사업자로 규정한다. 또 둘 이상의 사업자가 공동의 이익을 증진할 목적으로 조직한 결합체를 사업자단체로 정의하며 그 형태 여하를 불문한다. 즉 비영리단체, 임의단체도 어느 정도 상설조직을 갖추고 있으면 사업자단체가 된다. 프로기사는 사업자임이 분명하고 프로기사회는 기사들의 모임으로 일정한 회비를 걷고 사무조직을 갖추고 있기 때문에 당연히 사업자단체에 해당한다. 대한의사협회, 프로야구선수협회도 모두 법상 사업자단체이다.
공정거래법 26조는 이러한 사업자단체가 해서는 안 될 행위들을 규정하고 이를 어길 경우 5억원 이하의 과징금을 부과한다. 법 위반 행위자는 3년 이하의 징역 등의 형사처벌을 받을 수 있다. 사업자단체는 정당한 이유 없이 단체에 가입을 강제하거나 또는 가입을 거부하여 사업자의 사업활동 등을 제약하지 못하도록 되어 있다. 따라서 프로기사회의 가입을 강제하거나 탈퇴를 거부하는 것은 사업자단체의 금지행위에 해당한다.
이세돌 9단이 프로기사회를 탈퇴했을 경우 한국기원이 관여하는 바둑 경기에 참여할 수 없게 한 규정도 공정거래법상 사업자단체 금지행위에 해당한다. 공정거래법 23조와 26조는 다른 사업자로 하여금 부당하게 거래를 거절하게 하거나 차별적으로 취급하도록 해서는 안 된다고 규정하고 있다. 또 부당하게 경쟁자를 배제하지 못하게 규정하고 있다. 따라서 프로기사회가 한국기원으로 하여금 비회원인 이세돌 9단의 기전 참여를 못하게 하는 것은 한국기원으로 하여금 이세돌이라는 경쟁 사업자를 시장에서 퇴출시키거나 차별하도록 하는 행위이므로 공정거래법 위반이다.
나아가 한국기원이 독자적으로 이세돌 9단에게 기전 참여를 허용하지 않을 경우에도 차별적 취급 금지에 해당한다. 또 공정거래법은 현재의 한국프로기사회와 별도로 제2의 프로기사회를 창설하는 것도 당연히 허용하는 것이고 오히려 바람직한 것으로 전제하고 있다.
공정거래법은 치열한 경쟁과 공정한 거래를 통해 사업자의 경쟁력을 키우고 그로 인한 소비자의 혜택을 극대화시키고자 한다. 프로바둑도 선수 간의 치열하고 공정한 경쟁을 통해 바둑의 기술과 품위를 한층 높여가는 것이 당연하다. 프로기사회와 한국기원은 경쟁을 방해해서는 안 된다.
허선 전 공정거래위원회 사무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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