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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냐면] 공공기관 성과연봉제의 묵시록 / 강세희

등록 2016-06-08 19:30

최근 정부는 성과연봉제를 모든 공공기관에 일괄적으로 확대 도입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그러나 대상 기관 노조들의 강한 반발로 상당 기간 진통이 예상된다. 노동조합과 정부의 대립구도는 마치 성과연봉제가 공공부문 노동자들에게는 불편하지만 정부와 국민에게는 필요한 제도라는 인상을 준다. 공무원의 연봉을 성과와 연동하겠다는 계획은 언뜻 공공 서비스의 질을 높이기 위해 필요한 것으로 비치고, 노동조합의 반발은 철밥통을 놓지 않으려는 집단이기주의라고 여겨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성과연봉제는 공공부문 노동자뿐 아니라 정부나 공공서비스를 이용하는 국민의 입장에서 보더라도 부정적인 효과를 가져올 가능성이 크다.

첫째, 성과연봉제를 도입하면 평가 기준이 되는 실적 외의 성과 변수가 도외시될 수 있다. 예를 들어 공공부문 노동자의 보상이 생산성에 기반해 결정된다면 서비스 품질, 국민 안전, 공공성 등은 희생될 공산이 크다. 미국의 경영학자 브라이언 베커와 마크 휴즐리드는 자동차 경주 대회의 상금이 경기 결과에 미치는 효과를 분석하였는데, 성과에 따른 보상이 클수록 성과, 즉 기록은 좋아지지만 동시에 사고의 위험도 높아지는 경향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민간기업의 가습기 살균제 사례와 같은 ‘사고’가 공공기관에서도 발생하지 않으리라 장담하기 어렵다.

둘째, 창의적인 공공정책을 기대하기 어렵게 만든다. 영업직 등 비교적 객관적으로 성과를 평가할 수 있는 경우를 제외하면 성과연봉제는 대부분 주관적 평가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문제는 주관적 평가의 정확도와 신뢰도가 떨어질 뿐 아니라 이것이 성과연봉제의 도입 취지와 상반된 결과를 낳을 수 있다는 점이다. 공익을 증진하고 조직의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보이지 않는 곳에서 묵묵히 궂은일을 도맡아 하는 직원보다는 상사와 좋은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회식에서 폭탄주를 한 잔 더 마시고 골프장에서 ‘나이스 샷’을 한 번 더 외치는 직원이 좋은 평가를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아도 경직된 조직이라는 평가를 받는 공공기관에서 상사 눈치보기가 더 심해질 것이다. 이러한 환경에서는 창의적인 아이디어가 나올 수 없다.

셋째, 성과에 따른 보상과 이로 인한 임금 격차는 조직 내 갈등을 야기할 수 있다. 스탠퍼드대 경영학 교수 제프리 페퍼의 연구에 따르면 동료간 높은 임금격차는 협력을 저해하고 직무만족도를 떨어뜨리며 생산성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 특히 협력과 협동이 중시되는 팀 단위의 조직에서는 그럴 가능성이 더 크다. 더구나 정부가 발표한 권고안에 따르면 고성과자들은 기존보다 더 높은 연봉을 받을 수 있지만 반대로 저성과자들의 연봉은 기존보다 삭감될 수 있다. 인간이 이익보다 손실에 더 민감하게 반응한다는 사실을 고려할 때 정부가 기대하는 인센티브 효과는 결국 상쇄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공공기관의 존재 목적은 이윤 극대화가 아니다. 오히려 이윤 극대화 논리만으로는 시장에서 생산되기 어려운 상품과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존재한다. 만약 공공기관에서 성과를 단순히 생산성과 연계시킨다면 상대적으로 서비스의 질이나 공공성이 훼손될 우려가 크다. 더구나 모든 조직은 저마다의 고유한 문화를 가지고 있으며 하나의 조직 내에서도 직무에 따른 특성이 다양하다. 보상체계를 설계할 때 세심한 주의가 필요한 이유다. 이러한 사실을 도외시한 채 모든 공공기관에 일률적으로 성과연봉제를 도입하겠다는 것은 이해하기 어려운 결정이다. 성과연봉제가 절대악은 아니지만 동시에 절대선도 아니다. 재검토가 이루어지기를 기대한다.

강세희 미국 뉴저지주립대 박사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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