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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냐면] ‘리쌍의 법대로’는 왜 문제인가 / 구본기

등록 2016-07-18 17:55수정 2016-07-18 19:17

구본기
구본기생활경제연구소 소장

이른바 ‘임대인 리쌍 사태’로 서울 가로수길이 떠들썩하다. “또 강제집행이다”, “또 연예인이다”…. 언제부턴가 내 주위 사람들은 임대인과 임차인 사이의 분쟁을 이야기할 때에 ‘또’라는 말을 더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번은 전과 같지 않았다. 우선 규모 면에서 그랬다. 무려 굴착기가 등장했다. ‘이러다간 앞으로 탱크가 등장할 수도 있겠구나’ 생각했다.(집행관의 강제력 사용에 저항이 있는 경우, 해당 집행관은 민사집행법에 기초해 국군의 원조도 요청할 수 있다.) 무엇보다 여론이 압권이었다. 대중은 쫓겨날 위기에 처한 임차인 우장창창의 서윤수 사장을 여러 이유를 들어 나무랐다.

서윤수 사장의 일을 ‘언젠가 자신이 처할 수도 있는 흔한 일’로 인식하지 않는 것이 흥미롭다. 이는 강남역 살인사건이 곧장 세간의 공감과 공분을 사며 ‘우리의 문제’(사회적 문제)가 되었던 것과 사뭇 대조된다. “2억~3억원을 들여 장사하는 사람을 서민이라고 할 순 없잖아요” 따위의 말이 유독 많은 이의 공감을 자아내고 있다. “그럼 2억~3억원 들여서 장사하는 사람은 임대인에 의해 쫓겨나도(재산을 착복당해도) 된다는 말입니까?” 등의 반론은 이상하리만큼이나 눈에 띄지 않는다. 지금의 상황이 나쁘지 않은 리쌍은 그냥 ‘노코멘트’다.

리쌍 지지자들에게서는 “법대로 했으니 문제될 게 없다”는 유의 태도가 공통적으로 발견된다. 칼 포퍼는 <열린 사회와 그 적들>에서 이러한 사고방식을 ‘소박한 일원론’이라 부르며 ‘닫힌 사회’의 특성이라 기술했다. ‘자연적 법칙’과 ‘규범적 법칙’을 구별하지 못하는 상태, 다시 말해 인간 스스로 만든 법률 등을, 해가 뜨고 달이 지는 자연의 법칙과 혼동하여 절대로 바꿀 수 없다고 여기는 순종의 상태(무기력의 상태)다. ‘상가건물 임대차보호법’ 같은 비인권적인 법률에도, 용역이 동원된 끔찍한 강제집행에도 정의를 묻지 못한다.

이번 사태의 핵심은 상가건물 임대차보호법의 허점을 리쌍이 가차 없이 파고들었다는 데 있다. 원래 상가건물 임대차보호법은 ‘보증금+(월세×100)의 금액’이 일정 수준을 초과하는 임대차(‘환산보증금 초과 임대차’)에는 일체 적용이 배제되는, ‘완벽한 차별’을 전제로 하는 법률이었다. 하지만 2014년 1월1일부터는 환산보증금 초과 임대차에 대해서도 최대 5년의 계약갱신 요구권을 인정하도록 개정되었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통상 ‘임대차보호법에 의한 묵시의 갱신 관련 조항’이라고 부르는 이 법 제10조 4항의 적용 대상에서는 제외됐다.

이 조항은 임대차보호법이 보장하는 특정 기간 내(상가건물 임대차보호법은 5년)에, 그리고 계약서상의 임대차계약이 끝나는 때 즈음해서 임대인과 임차인이 아무 ‘액션’을 취하지 않으면 이전의 계약과 동일한 조건으로 계약이 체결된 것으로 보는 장치다. 이것은 일종의 ‘임대차 상식’이다. 서윤수 사장은 상식에 의거해 자신이 이 묵시의 갱신에 해당하는 줄로만 알고 계속해서 장사를 했던 것이다. 환산보증금 초과 임대차의 경우 계약 종료 1개월 전까지 임대인에게 계약 갱신을 요구해야만 계약이 갱신된다는 걸 아는 임차인이 과연 몇이나 있을까. 하필 리쌍은 서윤수 사장의 그런 실수를 놓치지 않았다.

상가건물 임대차보호법에는 이런 구멍이 십수 군데에 이른다. 지금의 법대로라면, 모든 임차상인은 임대인의 변덕에 의해 쫓겨난다. 이런 법률의 허점은 일반인이 쉽게 알 수 없다. 제도의 불합리함을 일반의 언어로 고발하는 일은 해당 영역 전문가들의 사회적 책무다. 그런데 지금 그들은 어디 있는가? 무엇을 하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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