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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왜냐면

[왜냐면] 제1야당의 직무유기 / 문학진

등록 2016-08-08 18:04수정 2016-08-08 19:18

문학진
전 국회의원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 체계의 한국 배치 문제와 관련해 이상하게 조용한 정치집단이 있다. 지난 4·13 총선에서 뜻하지 않게 승리를 거머쥔 더불어민주당이다. 당은 이 문제와 관련해 “당론이 없는 게 당론”이라며 ‘전략적 모호성’을 내세우며 명확한 입장 표명을 하지 않고 있다. 우상호 원내대표는 당이 이렇게 하는 배경에 대해 ‘정무적 판단’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설명을 했다.

더불어민주당은 이와 함께 ‘집권을 바라보는 정당’이기 때문에 이런 스탠스를 취하고 있다는 주석도 달고 있다.

이 당에 속해 있는 필자로서는 당의 이런 판단과 자세에 대해 결코 동의할 수 없다. 당이 어떤 단위에서 어떤 절차를 거쳐 이러한 ‘정무적 판단’을 내렸는지 필자는 잘 알지 못한다. 그러나 국가의 존망이 걸린 중대사안에 대해 제1야당이 제 입장을 내놓지 않고, 필짱을 낀 듯한 자세로 사태 추이를 지켜보고 있다는 것은 직무유기이다.

당의 ‘정무적 판단’은 아마도 박근혜 대통령이 회심의 카드로 던진 이 문제에 대해 덥석 달려들어 발을 빠트리면 오히려 궁지에 몰릴 수 있다는 계산에서 비롯된 듯하다.

전쟁을 겪은 나라에서, 아직도 분단이 지속되고 있는 상황에서 국가 안보와 직결된 이슈에 잘못 함몰되면 오도 가도 못하는 신세가 될 수 있다는 일종의 위기의식 때문에 내려진 판단으로 보인다.

그러나 사드의 효용성을 둘러싼 논란과 동북아 정세에 미칠 영향 등에 대한 객관적인 분석은 이미 끝났다고 보아야 한다. 무얼 더 뜯어보고 계산하고 할 문제가 아닌 것이다.

무언가에 대해 잘 모르겠고 정보가 매우 부족할 때 내미는 것이 ‘전략적 모호성’인 것이지, 이처럼 앞뒤가 명확하다면 명확한 입장을 천명하는 것이 책임있는, 집권을 바라보는 집단이 해야 할 일이다.

‘공학’에 매달려 기획주의적 운신을 천연덕스럽게 하는 정치집단에 미래가 있을까?

‘집권을 바라보는 정당’임을 자임하고 책임있는 자세로 국정 전반을 다루는 것은 좋다. 하지만 ‘집권=최상의 가치’라는 명제에 함몰되어 집권하면 무엇을 어떻게 하겠다는 명확한 비전이 결여돼 있는 정당이라면 그 정당이 선택을 받을 수 있을까.

심한 말로 그 당의 지도부든 국회의원이든 젯밥에만 마음이 가 있고 집권 플랜 하나 제대로 만들고 있다는 얘기 들려오는 일이 없다면 집권은 신기루에 불과할 수 있는 것이다.

언제부터인지 ‘중도’를 겨냥하고 가는 것이 마치 최선의 방책인 것처럼 운위되고 있는데, 그것도 땅에 제 발을 꾹 딛고 선 다음 일이지 얼마큼 붕 떠 있는 상태에서 딴 걸 보는 건 세상에 우스운 일이다.

‘집토끼 먼저 산토끼 나중’이다. 가까운 데서 전폭적인 신뢰를 받지 못하면 먼 데 가서는 더더욱 그렇다.

치열하지 못하고 설렁설렁 때만 보는 정치집단에 누가 힘을 실어주나. 워낙 박근혜 대통령과 새누리당이 지리멸렬하기 때문에 잘만 버티면 더불어민주당이 집권할 거라는 이야기가 시중에 나도는 것도 사실이다.

그렇다 하더라도, 대충 잘 버텨서 집권했다 치자. 국가적으로 중요한 사안이 하나둘이 아닐 텐데 그때마다 집권세력이 이것저것 좌고우면하면서 ‘전략적으로 모호하게’ 처신한다면 그게 국정을 담당하는 올바른 자세일까.

정치에는 때가 있다. 어느 때 꼭 내놓아야 할 입장을 무슨 이유에서인지 내놓지 않고 뭐하는 집단인지 모를 행동거지를 하면 반드시 대가를 치르게 된다.

4·13 총선 전 새누리당 회의실에 붙어 있던 문구가 생각난다. ‘정신차리자, 한순간 훅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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