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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냐면] 히포크라테스가 말한 사람의 도리 / 이현의

등록 2016-10-10 18:29수정 2016-10-10 18:57

이현의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 회원, 신경과 전문의

믿을 수 없는 일이다. 백선하 교수는 가족들이 치료를 거부해 사망했기 때문에 병사로 사망진단서를 작성했다고 한다. 생사를 가르는 뇌수술을 하고 10개월 동안 연명치료를 한 담당의사가 가족들에게 그런 이야기를 할 수 있다니. 수술 직후, 그는 백남기 선생님이 거의 뇌사 수준이고 소생 가능성이 희박하다고 했다. 무의미한 연명치료를 포기하는 ‘연명의료계획서’를 내놓은 것도 담당 의료진이다. 무엇보다 하루아침에 지아비와 아버지를 잃은 가족들의 슬픔과 안타까움을 단 한 번도 가슴으로 느껴보지 않은 것 같다. 단 한 번만 느꼈더라도 비겁하기 짝이 없는 저 망발을 내놓을 수는 없을 것이므로.

작년 늦가을, 백남기 선생님을 처음 만난 것은 그가 물대포를 맞고 뇌출혈로 응급수술을 받은 며칠 후였다. 선생님은 혼수상태였고 뇌부종이 심해 머리뼈를 잘라낸 오른쪽 뇌는 금방이라도 터질 듯 부푼 채 흰 붕대에 감싸여 있었다. 뇌출혈이 심할 때 생기는 뇌뿌리 눌림 때문에 스스로 숨을 쉴 수 없어 인공호흡기를 달고 있었고, 혈압도 몹시 불안정하여 승압제를 수시로 조절하고 있었다. 나는 맨 먼저 뇌 컴퓨터단층촬영(CT) 사진부터 찾았다. 중환자 대기실 앞에서 발을 동동거리며 어쩔 줄 몰라 하는 가족들에게 실낱같은 희망이라도 줄 수 있는 근거가 내게는 필요했다. 그러나 시티에서는 뇌출혈 양이 많아 뇌의 정중앙선이 반대편으로 밀려 있었고 뇌탈출증까지 보이고 있었다. 이런 경우, 보통 소생 가능성이 희박하여 뇌수술을 하지 않는 게 상례다. 실제로 처음 응급실 도착 당시 의료진은 포기하고 요양병원으로 가서 임종을 기다리라고까지 했다. 그러나 몇 시간 후 약간의 신경학적 반응이 있다며 백 교수는 수술을 했다. 그 후, 선생님은 한 번도 의식이 돌아오지 않았다. 계속 폐렴, 패혈증, 진균혈증 등 여러 합병증으로 다발성 장기 부전증이 왔다. 결국, 소변이 잘 나오지 않는다고 투석을 하자는 의료진의 제안이 있었다. 중환자실 앞 딱딱한 대기 의자에 앉아 백남기 선생님의 부인은 얘기하셨다. “인자, 투석 같은 거 하면 뭐한다요. 가실 길 보내드려야지잉. 처음 만났을 때, 군부독재 시절이라 데모를 혀서 감옥까지 갔다 왔다고 들었는디, 그래 보이지는 안 허고 사람이 참 진실혀 보이더만. 다른 것은 몰라도 그 진실한 것은 한평생 변함이 없어재잉. 돈 버는 재주는 없어두 나랑 애들한티는 잘혔어. 결혼허고 도라지 낳고는 데모 같은 것은 거의 안 했는디 하도 쌀값이 내려가서 살 수가 없응게 그 얘기 쪼까 한다고 올라간 것이 이런 숭헌 일이 생겨 부렀소잉.” 오래 산 부부가 그러하듯 어르신과 오누이처럼 닮은 그분은 어쩔 수 없이 이생에서의 연을 놓아드리려 애쓰고 있었다.

아픈 몸을 의사라는 이유 하나로 우리에게 내놓고 삶과 죽음의 갈림길에서 의지하는 환자들이 있다. 그들을 우리는 어떤 외압으로부터도 지켜주어야 할 의무가 있다. 그것을 히포크라테스는 인륜, 사람이 사람에게 다해야 하는 도리라고까지 했다. 사람이라면 꼭 해야 할 도리 말이다. 이제 그 도리를 다할 서울대와 백선하 교수님을 기다려 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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