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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냐면] 대선후보 국내거주 ‘5년’…선관위 해석 타당한가 / 위대훈

등록 2017-01-16 18:20수정 2017-01-16 18:57

위대훈
변호사

촛불은 탄핵정국을 낳았다. 2016년도 사자성어 ‘군주민수’(君舟民水)를 새기며, 불의에 항거한 4·19 민주이념을 계승한 헌법을 통해 국민의 저항권을 돌아본다.

간선제를 채택한 1948년 제헌헌법에는 대통령의 피선거권 조항이 없다가 1952년 직선제 개헌과 함께 법률에 ‘만 3년 이상 국내에 주소를 가진 만 40세 이상’으로 규정되었다. 제2공화국(내각책임제)을 건너뛰어 1963년 제3공화국 헌법에서 ‘선거일 현재 계속하여 5년 이상 국내에 거주하고 40세에 달한’으로 구체화되면서 ‘공무상 국외파견 기간’이 예외기간으로 구제되었다. ‘5년 계속 거주’와 ‘40세’는 민심과 실정을 헤아리는 경험과 연륜, 즉 공감과 소통의 실천능력을 말한다. 그러나 1987년 헌법은 국내거주 요건을 삭제하였다. 시민항쟁으로 탄생한 개정 헌법이 전두환 신군부에 의해 반강제적으로 미국 망명길에 올랐던 디제이의 출마를 봉쇄할 수는 없었으리라.

그 후 1997년 1월13일, 공직선거법에 대통령의 피선거권을 ‘선거일 현재 5년 이상 국내에 거주하고 있는 40세 이상’으로 하는 규정이 다시 도입되었다. 구 헌법의 ‘공무상 외국파견 기간’에 ‘국내에 주소를 두고 일정기간 국외에 체류한 기간’을 예외기간으로 추가하였다. 그런데 구 헌법의 ‘계속하여’라는 문구가 삭제된 바람에 국내거주 기간의 계속성에 논란이 생겼다. 최근 선거관리위원회는 거주의 계속성이 필요하지 않다고 해석하였다. 선관위의 해석은 타당한가? 그렇지 않다고 본다.

공직선거법의 ‘거주하고 있는’이라는 표현은 이미 ‘계속성’을 포함하고 있으므로, 구 헌법의 ‘계속하여∼ 거주하고’와 같은 표현이라고 보는 것이 사전적·문리적으로 자연스럽다. 이 점은 법체계에서 더욱 뚜렷해진다. 공직선거법의 ‘국내거주 요건’을 40세 이상의 국민이 일생 동안 고작 5년만 국내에 거주해도 되는 정도로 해석해야 한다면, 굳이 이를 법률로 규정할 필요가 없다. 공직선거법이 구 헌법이 국내거주 기간의 계속성에 대한 예외기간으로 규정한 ‘공무상 외국파견 기간’을 그대로 부활시키면서 ‘국내에 주소를 두고 있는 일정기간 국외체류 기간’을 예외기간으로 추가할 필요도 없다. 예외기간은 ‘국내거주 기간의 계속성’으로 인한 불이익을 구제할 필요가 있는 기간으로서 의미가 있다. 결론적으로, 공직선거법은 1987년 당시의 비정상적인 상황이 해소됨에 따라 구 헌법의 국내거주 요건(계속성)을 부활시킨 데 그 의의가 있다고 보아야 한다.

‘국내거주 기간 5년’은 ‘국내에서 실제로 살고 있어야 한다’는 일의적 의미이다. 예외기간은 모두 생활 근거지가 국내여야 한다. ‘공무상 외국파견’의 생활 근거지가 국내임은 자명하다. ‘일정기간 국외체류’는 공직선거법이 ‘국내에 주소를 두어야 한다’는 제약을 두는 것으로 해결하였다. 우리 민법 제18조 제1항은 생활의 근거가 되는 곳을 주소라고 명백하게 규정하고 있으니 이론이 없다. 선거일 현재를 기준으로 역산하여 5년 이내 기간에서 그리 길지 않은 해외 유학, 연수와 같이 국내 복귀가 자유로운 경우가 여기에 해당할 것이다.

대통령의 피선거권을 다른 공직자보다 엄격하게 취급하는 것은 합리적 차별이다. ‘국내거주 요건’은 공감과 소통의 실천능력을 판별하는 최소한의 법적 기준이므로, 예외가 있을 수 없다. 탄핵정국은 대선정국을 낳았다. 이미 대선 레이스는 시작되었는데, 유력 후보의 피선거권에 논란이 일고 있다. 혹시라도 대선 후에 당선무효 시비가 생기지 않기를 바란다. 헌법과 법률이 지배하는 민주주의 사회라면, 이런 시비는 사전에 없애는 것이 타당하다. 피는 꽃에 공감과 소통의 봄이 오기를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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