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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냐면] 민주주의와 재클린의 눈물 / 이명주

등록 2017-06-12 18:35수정 2017-06-12 18:59

이명주
명지대 건축대학 교수, 제로에너지건축센터장

첼로 연주곡 ‘재클린의 눈물’은 베르너 토마스 미푸네가 비운의 첼리스트 재클린 듀프레를 추모하기 위해 오펜바흐의 곡에 ‘재클린의 눈물’이라는 제목을 붙여 헌정한 연주곡이라고 한다. 그 헌정곡이 이한열 열사 30주기 추도식이자, 6월 민주항쟁 30주년 기념식장에서 흘러나왔다.

“민주주의는 물처럼 흐를 때 가장 강력하다”는 문재인 대통령의 기념사를 뒤로하고 첼로의 아름다운 선율이 흘렀고 필자의 눈가에도 눈물이 흘렀다. 나도 모르는 사이 어릴 적 한 번도 본 적 없는 그때 그분들을 순간적으로 추모하고 있었다. 1980년 집 앞에는 탱크가 있었다. 탱크 옆을 지키는 군인들의 고함과 트럭이 간간이 지날 때마다 사람들의 외침이 전쟁처럼 들렸다. 5월 어느 날, 상무관 안과 밖은 시신을 덮은 하얀 천으로 가득했다. 중학교 1학년 필자의 손을 붙잡고 굳이 금남로를 걸어 도청까지 같이 가 주셨던 아빠 덕분에 강렬한 질문 하나를 가질 수 있었다. “왜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죽었을까?” 1987년이 되었고 대학교 학생회관 앞에서 봤던 5·18 광주민주화운동 사진에 이끌려 교지 편집실로 들어갔다. ‘광야에서’, ‘타는 목마름으로’, ‘마른 잎 다시 살아나’ 등 민중가요는 항상 최루탄이 널뛰는 거리에서 한 맺힌 목소리로 불러야 했다.

2017년 6월10일, 30주년 민주항쟁 기념식에서 오랫동안 금지곡이라고 단단히 믿었던 ‘광야에서’를 서울시청 원형광장 한복판에서 오케스트라 연주에 맞춰 테너 김세일의 선창으로 온 참석자들이 따라 부르고 있었다. 어쩌면 1980년 5월18일 광주민주화 운동을 겪었던 죽은 자의 혼과 산 자의 추억도 함께 따라 불렀을 것이다.

천재 연주자 재클린 듀프레는 근육이 서서히 굳어져가는 투병 중에도 연주를 끝까지 놓지 않았다고 한다. 동시대의 연주가 베르너 토마스 미푸네가 재클린을 추모하지 않았다면 이렇듯 아름다운 연주곡 ‘재클린의 눈물’은 없었을 것이다.

대한민국의 민주주의가 그녀의 몸처럼 굳어져가던 그 순간, 고통스러운 죽음으로 저항했던 이들이 있었고, 그들을 향한 그리움과 안타까움의 눈물이 있었기에 오늘 우리는 품위 있는 ‘6·10 추모식’을 맞이할 수 있었다. 죽은 자를 잊지 않고 그리워하는 눈물만이 대한민국 전 국토에 민주주의가 흘러갈 물길을 탄탄하게 만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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