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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왜냐면

[왜냐면] 약자를 차별하는 도시 / 송진영

등록 2017-09-11 18:15수정 2017-09-11 19:11

송진영
뉴욕주립대 건축과 교수

올해 가을 한국에는 건축도시 관련 행사가 참 많다. 미국에서 건축을 가르치는 필자는 미래 도시에 대한 전시와 건축의 키네틱(움직이는) 입면에 대한 연구를 ‘국제건축연맹(UIA) 2017 서울세계건축대회’에서 발표하러 한국을 방문했다. 여러 나라의 실력 있는 건축가들과 교류하는 것도 즐거웠다. 1천만이 사는 서울에서 자율진화도시와 도시의 미래에 대해 고민하는 것도 역량 있는 기획자들 덕분이라고 생각했다.

문제는 테헤란로의 한 호텔에 묵으며 며칠 유모차를 끌고 주변을 걸어다니면서 시작되었다. 테헤란로의 건축물은 세계적인 수준인데 그 근처를 유모차가 다니기에 너무나 불편했고 휠체어로는 불가능해 보였다. 자동차 진입로와 보행자가 만나는 턱이 너무 높았고 어지럽게 보행자 길에 주차된 차들, 전신주, 가로등이 길을 가로막고 있었다. 식당 화장실은 다른 층에 있어 계단을 이용해야 하고 대부분의 화장실이 휠체어가 들어갈 수 없는 상태였다. 심지어 물건을 사러 지하에 있는 매장에 가려고 하니, 그 상점이 속한 건물 로비가 문을 닫아서 계단으로만 갈 수 있었다. 문의를 하니 건물 관리인의 대답은 놀랍게도 어쩔 수 없으니 7시 전에 쇼핑하라는 것이었다.

나는 장애인 이동권이 지켜지지 않아 강력하게 항의했고 매장 매니저의 사과를 들었지만, 건축가로서 부끄러웠다. 키네틱 입면과 미래 아파트에 대한 연구가 모든 사람이 안전하게 가고 싶은 곳을 갈 수 있게 해주는 건축가의 기본적인 임무에 비춰 덜 중요하게 느껴져서다. 이렇게 휠체어를 타는 사람을 차별하는 것이나 졸속으로 만든 비상구에서 사람이 추락사하는 것, 공공시설의 이동편의시설이 열악한 것도 건축가의 책임이고 건축 교육의 문제다. 내가 가르치는 학교에서는 학부 2학년이 되면 모든 도면이 장애인법(ADA·The Americans with Disabilities Act)의 요구사항을 충족시키도록 가르치는데, 이는 휠체어가 이용하는 길, 문턱, 화장실, 램프, 계단, 문 열 때의 공간 등을 포함한다. 미국건축학교육인증원(NAAB·National Architectural Accrediting Board)이라는 기관에서 이 부분들이 학생들의 작품에 반영되었는지 검토한 후 인증을 해준다. 물론 디자인 리뷰 중에 이런 부분을 토론하는 것은 아닌데, 왜냐하면 너무 당연하게 받아들여지기 때문이다. 올해 대회의 주제는 도시의 혼이었고 세계적인 거장들과 함께 도시의 미래를 토론했지만 약자를 배려하지 않는 도시의 미래는 화려할지언정 미개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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