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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냐면] 미투운동, 지옥을 뚫고 나온 저항 / 정지우

등록 2018-02-26 18:13수정 2018-02-26 19:30

정지우
문화평론가·<분노사회> 저자

서지현 검사와 최영미 시인의 폭로로 시작된 ‘미투(#metoo) 운동’이 법조계, 문화예술계를 넘어 종교계, 학계 등 사회 전반으로 확산되고 있다. 오랫동안 우리 사회 곳곳에 스며들어 당연시되던 범죄들이 이제야 수면 위로 나오고 있는 것이다. 이는 마치 독재정권 시절, 검경과 중앙정보부·국가안전기획부(현 국가정보원)를 비롯한 온갖 국가권력에 의해 자행되던 무차별적인 폭력과 살해가 민주화 이후에야 고발된 기억을 되살린다. 그렇게 보면, 소위 ‘수직적 권력’이 낳은 폭력의 문제가 이제야 조금씩 민주화를 맞이하고 있는 셈이다.

‘미투 운동’은 단순한 성폭력 고발 운동이 아니다. 오히려 이 운동은 근래 일어난 사회 움직임 중에 우리 사회의 가장 본질적인 문제를 겨냥하고 있다. 나아가 실천적으로도 이보다 더 중요했던 현상은 드물다. 촛불을 든 시민, 참사 현장에 나선 사람들, 혐오에 대한 저항 등은 다소 제한적이고 특정한 정치적 추구를 담고 있었다. 그러나 미투운동은 다르다. 이 운동은 우리 사회의 가장 고질적이고도 악질적인 병리 현상인 ‘수직적 권력 구조의 문제’를 정면으로, 그러면서도 가장 절박하고 진실하게 마주하고 있다. 이는 단 한 번도 제대로 청산된 적 없는 적폐이자, 진영이나 분야를 가릴 것 없이 공기나 세균처럼 우리 사회 전체에 스며들어 있던 일상 그 자체다.

가해자들은 이 ‘수직적 권력의 문제’가 만연했던 사회상을 마치 당대의 ‘문화’나 ‘관습’이라 이야기하곤 한다. 하지만 엄밀히 보면, 이를 문화나 관습이라 말하는 건 심각한 착각이자 왜곡이 아닐 수 없다. 한 줌의 권력을 가졌다는 이유로, 한 인간이 다른 사람의 입장을 상상하고, 공감하며, 생각할 최소한의 능력조차 상실해버린 순간들이 가능하다는 것 자체가 오히려 ‘문화의 불가능성’을 지시한다. 차라리 이것은 야만이고, 비-인간이자 비-문명이며, 인간이 되기를 포기한 자들이 만들었던 지옥이다.

이 ‘가부장적 수직 권력 구조’야말로 우리 사회의 가장 오래된 적폐이자 핵심적인 문제였다. 이 구조 안에서는 모든 이들이 ‘인간’의 지위를 잃는다. 구조의 상부에 위치한 인간은 스스로 인간이길 포기하면서 타인의 인격뿐 아니라 타인의 삶 자체를 말살하는 괴물이 되기를 자처한다. 인격의 핵심 중 하나인 성적 자기결정권을 무차별적으로 유린하고, ‘갑질’로 대변되는 각종 폭력과 착취로 인권의 말살에 동참한다. 구조의 하부에 위치한 인간은 권리를 박달탕한 비-인간이 된다. 이 구조의 상부를 차지하는 대부분 남성의 폭력이 우리 사회를 만드는 데 가장 큰 ‘공’을 세웠음은 자명하다. 특히 이 구조 안에서 여성들은 거의 집단적으로, 어디에서나 인간의 권리를 말살당하는 위치에 있었던 것 같다. 이는 단순히 가해자와 방조자가 만들어낸 ‘안타까운 사연’이 아니다. 차라리 언제 어디에서나 괴물들이 어슬렁거리며 인격을 말살하는 역사적으로도 심각한 야만의 현장 중 하나였다.

미투운동을 보는 관점은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이 문제는 실상 남-여의 대립적 차원을 벗어나 있다. 차라리 이것은 ‘인간’에 관한 문제다. 어떻게 우리 인간들이 인간이기를 포기해왔고, 전혀 인간이 아니었는지, 그래서 어떻게 앞으로 인간들이 사는 세상을 만들어낼 것인지에 관한 문제다. 이 운동이 단순히 몇몇 가해자를 지목하고 끝날 문제가 아닌 이유다. 절박한 용기로 나선 고백자들을 이어받아, 우리 사회 전체를 바꿀 수 있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 그래서 우리도 인간이 되어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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