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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냐면] 그들은 인류의 존엄성을 쏘았다 / 김재현

등록 2018-05-21 18:36수정 2018-05-21 19:15

김재현
나눔문화 사회행동팀장

5월14일, 전세계 안방에는 충격적인 장면이 하루 종일 생중계되었다. 미국 <시엔엔>(CNN), 영국 <비비시>(BBC), 아랍권 <알자지라> 등 세계 외신은 두 개의 상반된 장면을 한 화면에 담아 중계했다. 하나는 미국이 이스라엘 주재 대사관을 예루살렘으로 옮기며 열린 축제 같은 기념식과 트럼프 대통령의 장녀 이방카가 환히 웃는 모습이었고, 또 하나는 팔레스타인 가자지구와 이스라엘 접경지역에서 이스라엘군이 팔레스타인 민간인들을 총기 사격과 최루탄 살포로 진압하는 장면이었다.

이날은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을 강제로 빼앗고 건국을 선포한 건국기념일이었다. 그리고 다음날 15일은 빼앗긴 나라와 고향을 되찾기 위해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지정한 ‘대재앙(나크바)의 날’이었다. 시위에 나선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우리는 영원히 이렇게 살 수 없다”며 이스라엘의 식민지배를 거부하고 70년 전 빼앗긴 고향을 향해 나아가며 죽어갔다. 이날 하루 만에 8개월 된 아기 등 60명이 숨졌고 2700여명이 다쳤다.

미국의 예루살렘 대사관 이전은 유엔 결의안 등을 위반한 국제법 위반이며, 30억 인류의 성지이자 세계 평화의 수도인 예루살렘을 영구히 이스라엘 땅으로 만들려는 ‘침략’이었다. 그러나 이번 사태 직후 열린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긴급회의에서 니키 헤일리 미국 유엔대사와 다니 다논 이스라엘 유엔대사는 ‘테러조직 하마스에 의한 폭동이며, 이스라엘은 방어권이 있다’고 주장했다.

지금의 사태가 과연 ‘테러조직 하마스의 폭동’인가? 하마스는 팔레스타인의 양대 정당 중 하나로, 2006년 민주선거를 통해 집권했으며 팔레스타인 민중의 60%에 이르는 지지를 받고 있다. 하마스는 이번 시위에 식량과 물 등을 지원해왔으며, 무기를 지원한 적이 없다. 과연 ‘이스라엘의 정당한 방어’가 될 수 있는가? 이스라엘은 비무장한 팔레스타인 민간인들을 실탄사격했다. 실탄은 땅에 엎드려 기도하던 노인, 돌멩이를 던지던 소년, 팔레스타인 국기를 들고 뛰어가던 청년들의 머리와 심장에 정확히 꽂혔다.

이번 학살은 70년간 이어진 역사를 압축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이스라엘 정부는 팔레스타인 땅에 높이 8m 길이 700㎞가 넘는 분리장벽 등을 건설하며 팔레스타인 사람들을 ‘걸어 다니는 수인’으로 만들었다. 사람들은 곳곳에 설치된 검문소에서 이스라엘군의 검문을 기다리며 인생의 30%를 보낸다. 이스라엘 정부는 아무런 법적 근거 없이 팔레스타인 사람들을 체포한다. 2017년 기준, 이스라엘 감옥에 갇힌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6500여명에 달하며 미성년자만 350여명에 이른다.

또한 국제법적으로도 불법인 이스라엘의 정착촌 건설 문제가 심각하다. 현재까지 약 60만명에 이르는 유대 정착민들은 팔레스타인 땅을 빼앗으며 쪼개고 있다. 이스라엘 정부는 정착촌을 자국 영토로 편입하는 법률을 준비 중이다. 특히 인구 200만명에 이르는 가자지구 사람들은 11년간 이어진 이스라엘의 봉쇄로 식수와 전기, 의료 등을 제때에 공급받지 못하고 있으며, 인구의 80%가 구호물품에 의존해 살아가고 있다. 유엔은 ‘2020년이면 이곳에서 사람이 살 수 없을 것’이라고 경고한 바 있다. 이처럼 지난 70년은 모든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거대한 감옥’에서 종신형을 살아온 세월이었다.

지금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단 하루라도 사람으로 살고 싶기에 저항하고 있다. 분리장벽에 갇힌 절망의 벽을 부수고 있다. 희망의 행진으로 새 역사를 쓰고 있다. 저항은 전세계로 흩어진 700만 팔레스타인 난민들과 세계인들의 마음에 깊이 심어질 것이다.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 불법점령과 민간인 학살을 중단해야 한다. 미국은 예루살렘 대사관을 즉각 철수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한국 정부에 바란다. 정부는 이스라엘의 학살범죄와 미국 대사관 이전에 반대하는 입장을 밝혀야 한다. 그리고 지난 3월 유엔 인권이사회가 결의한 대로 이스라엘에 대한 무기 수출을 중단해야 한다. 이는 세계의 관심과 지원 속에 한반도 평화를 이뤄가고 있는 한국의 적임이자 책임일 것이다. 70년 냉전 시대의 마침표가 될 한반도 평화 그리고 인간 존엄성을 회복하는 출발점이 될 팔레스타인의 평화를 동시에 이뤄갈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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